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우크라이나의 기만과 러시아의 자만이 거함 ‘모스크바’ 격침시켰다

입력 | 2022-04-23 11:52:00

드론에 숨은 ‘넵튠’ 미사일로 3단계 다층 방공망 돌파






우크라이나의 P-360 넵튠 대함 미사일. [사진 제공 · 우크라이나 국방부]


4월 14일(이하 현지 시간)은 러시아군 역사에 가장 치욕스럽고 끔찍한 하루로 기록될 것 같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 3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날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공항에 구축한 보급창을 잃었다. 해당 보급창은 드네프르강을 등지고 배수진을 친 러시아군이 향후 사용할 탄약과 유류를 몇 주에 걸쳐 모아놓은 곳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물자 집적을 지켜보다 4월 14일 새벽 4시 대대적 포격으로 이곳의 물자를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탄약과 유류를 대부분 잃은 러시아군이 헤르손 전투에서 패퇴하고 드네프르강 이남으로 쫓겨나면 심각한 전략적 위기에 몰리게 된다. 우선 강 이남에 예비 병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크림반도가 곧바로 위협받는다. 우크라이나군이 강 이남의 도로와 철도를 이용해 교통 요충지 멜리토폴을 치면 돈바스 전선의 측면도 노출된다.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돈바스지역은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과도한 병력 징집과 물자 수탈에 기진맥진한 상태다. 러시아군은 하르키우 남동쪽 도로를 통해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들어왔다. 돈바스지역이 뚫리면 하르키우 북부에서 우회 기동 중인 우크라이나군 부대가 러시아군 퇴로를 차단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군 물자를 제거한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숨겨놓은 전략예비부대 제80독립공중강습여단을 투입해 헤르손에 파상 공세를 시작했다. 4월 14일 헤르손 공항 피격이 이번 전쟁 판도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이다.
헤르손 공항 포격 이은 악재

우크라이나가 자국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격침됐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해군 순양함 모스크바의 침몰 당시(오른쪽)와 평소 모습. [뉴시스, 사진 제공 · 러시아 국방부]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 공항 포격에 나서기 3시간 전, 개전 초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령 ‘스네이크 아일랜드’ 인근 해역에서도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잠시 뒤 국제공용주파수와 모스부호 등 여러 통신 수단을 통한 구조 요청이 흑해 연안 국가는 물론 선박에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발음의 주인공은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RFS Moskva)’.

모스크바함은 새벽 1시 5분 첫 SOS 시그널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9분 뒤인 1시 14분에는 배가 좌현으로 기울며 침수되고 있다고 타전했다. 구조 요청 신호를 수신한 터키 선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1시 44분, 배는 3분의 1가량 왼쪽으로 기울고 모든 전기가 끊겨 있었다. 터키 선박은 자국 해사당국에 모스크바함 승조원 54명을 구조했다고 보고했다. 뒤늦게 도착한 러시아 해군도 14명을 구조한 뒤 모스크바함 예인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오전 3시 터키 선박은 모스크바함이 완전히 침몰했다고 보고했다. 68명이 구조됐지만 모스크바함 탑승 승조원 510명 중 일부에 불과했다.

흑해함대 최대 함정(艦艇)이자 흑해함대의 기함이며 옛 소련이 미국 항공모함을 제압하고자 내놓은 ‘슬라바급(Slava class)’ 순양함의 초도함 모스크바. 1983년 슬라바라는 이름으로 취역했지만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재정 부족으로 퇴역했다. 이후 러시아가 2000년 일부 개장 공사를 실시해 현역에 복귀시켰다. 순양함이라는 분류에 걸맞게 길이 186.4m, 폭 20.8m에 만재배수량이 1만3000t에 달한다.

이러한 거함을 격침시킨 우크라이나군의 비수(匕首)는 ‘넵튠(Neptune)’으로도 불리는 P-360 대함 미사일이다. 북한도 복제품을 개발해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Kh-35 ‘우란(Uran)’을 확대 개량한 버전이다. 최대사거리 300㎞, 비행 속도 마하 0.8 정도로 스펙만 두고 보면 평범한 대함 미사일이다. 미사일 탄두 중량은 150㎏에 불과해 200㎏이 넘어가는 일반 대함 미사일보다 위력이 약한 편이다. 그 때문에 제조 및 판매를 맡은 우크라이나 국영 방위산업체 우크로보론프롬(Ukroboronprom)은 해당 미사일을 5000t가량 규모의 군함 파괴를 상정해 개발한 무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각 밝힌 카탈로그 데이터만 놓고 보면 넵튠 미사일로 모스크바함을 격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스크바는 구식함이지만 한때 미국을 긴장케 한 소련 최강 전투함이었다. 넉넉한 선체에 무기가 대량 탑재된 모스크바함을 스텔스 형상도 아닌, 느린 속도의 대함 미사일로 격침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스펙상 미사일 32발 쏴야 격침 가능

크림반도 인근 해상에서 훈련 중인 러시아 해군 함정들. [뉴시스]

모스크바함은 선체는 낡았지만 강력한 무장을 갖추고 있다. 군함의 눈에 해당하는 3R41 회전식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는 높은 정밀도를 지닌 X밴드 레이더다. 100㎞ 거리 안에서 저고도로 접근하는 순항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다. 동시에 6개의 공중 표적에 3M41 함대공미사일 12발을 유도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다. 육상용 장거리 방공시스템 S-300 해상형에 탑재된 3M41 미사일은 90㎞급 사거리를 갖추고 있다. 모스크바함수직발사기에는 3M41 미사일 64발이 탑재돼 있다. 각각의 공중 표적에 2발의 요격미사일을 사용한다고 전제하면 모스크바함의 중거리 방공망을 뚫는 데 대함 미사일 32발 이상을 쏴야 한다는 뜻이다.

모스크바의 대공방어시스템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단거리 방공용으로는 OSA-MA 시스템이 탑재돼 있다. 육상용 단거리 방공체계 OSA의 해군 버전인 이 시스템은 사거리 15㎞의 9M33 미사일과 MPZ-301 사격통제레이더 2개로 구성된다. 모스크바함에는 수직발사기에 40발의 9M33 미사일이 적재돼 있고 각각의 MPZ-301 레이더는 한 번에 1개씩 미사일을 유도할 수 있다. 3M41 미사일의 중거리 방공망을 뚫고 들어온 표적은 OSA-MA가 맡아서 처리할 수 있다. 이것마저 뚫린다면 최후 방어체계로 AK-630 CIWS(Close-In Weapon System)가 가동된다. AK-630은 30㎜ 구경 6총신 기관포를 갖춘 대공시스템으로, 분당 최대 5000발의 탄을 발사할 수 있다. 교전 가능 거리는 3㎞에 달한다. 모스크바함에는 이 시스템이 6기나 탑재돼 있다. 이처럼 모스크바함의 다단계 방공망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소수의 넵튠 미사일로는 절대 돌파할 수 없는 ‘신의 방패’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방패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러시아 해군 지휘관들 때문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4월 10일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출항한 모스크바함은 전시 실전 출항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작전 해역에 도착한 모스크바함은 오데사 해안에서 약 60~80해리 거리를 유지하며 마치 거대한 원을 그리듯 동일한 항로를 돌고 또 돌았다. 당시 모스크바함의 임무는 우크라이나 해상 교통로 봉쇄와 러시아 함대지미사일 군함 보호였다. 모스크바함의 작전 해역은 우크라이나 해군 넵튠 미사일의 사정권 안이었다. 4월 3일 러시아 흑해함대 호위함 어드미럴 에센(RFS Admiral Essen)이 넵튠 미사일에 피격된 적도 있다. 간간히 우크라이나 무인기가 모스크바함에 접근했지만 3단계 다층 방공망이 있었기에 승무원 어느 누구도 이를 위협으로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4발의 대함 미사일을 드론 여러 대에 숨겨 러시아를 기만했기 때문에 이러한 자만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러시아는 4월 3일 단 하루를 빼곤 해안방어미사일시스템(Coastal Defense Cruise Missile·CDCM)이 작동하지 않은 점에 안심했다. 우크라이나의 넵튠 생산 라인이 코로나19 사태로 정상 가동되지 않아 미사일 재고가 없다고도 오판했다. 러시아는 2월 말부터 3월 말까지 10~12척 규모의 상륙함대를 오데사 앞바다에 띄워놓고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는데도 우크라이나 측 넵튠 미사일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철저한 기만전 결과였고 러시아는 여기에 속아 넘어갔다.
전력 우위라도 방심은 금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상륙에 대비해 오데사를 요새화하고, 이곳에 최소 5개 여단의 병력을 배치했다고 여러 차례 정보를 흘렸다. 이 때문에 러시아 역시 흑해함대의 가용 전력을 모두 끌어모아 오데사 앞바다에 배치했고 양측은 한 달 넘게 눈치 싸움을 벌였다. 우크라이나는 오데사가 침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러시아 상륙함대를 상대로 어떤 공격 시도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 상륙함들은 보름 이상 오데사 앞바다에 떠 있다 2~3일 복귀해 휴식하고 다시 오데사 앞바다로 돌아왔다. 파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평저선(平底船)에 병력을 가득 태운 채 장시간 바다에 떠 있는 것은 상륙군의 체력을 멀미로 소진케 하는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10여 척의 상륙함에 실제 상륙 병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간파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오데사에 상륙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때문에 대함 미사일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면서 러시아군과 눈치 싸움만 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속셈을 읽지 못하고 대함 미사일 재고가 없다고 오판했다. 설령 미사일이 있어도 모스크바함의 방공망을 뚫을 수 없다고 자만했다. 결국 그 자만이 흑해함대의 기함이자 러시아 해군 자존심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모스크바함 격침 사건은 전력이 아무리 우위에 있다 해도 자만과 방심, 그리고 적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반대로 전력이 열세라도 치밀한 전략과 냉철한 정보 판단, 그리고 강한 의지만 있다면 강적을 상대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교훈도 안겨줬다. 한국군도 현재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36호에 실렸습니다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