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 경력관리 몰두하며 복지부동 ‘신발 속 돌멩이’ 빼는 개혁 가능한가
홍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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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에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선임한 것은 의외였다. 최 전 차관은 전 정부에서 미르재단 설립과 관련해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퇴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추락 경험 덕에 최 전 차관이 윤 당선인의 눈에 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를 앞둔 2017년 초, 그는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공무원은 상관의 명령이 곧 국민의 명령이라고 믿고 일하는데 ‘최순실 게이트’로 이 신뢰가 깨졌으니 민감한 업무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기우가 아니었다. 현 정부 들어 장차관, 실국장 등 상관의 명령을 받는 공무원들은 지시의 배경에 의심을 품으며 메모와 녹취로 증거를 남기려 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자신은 직접 책임이 없다는 비망록이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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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되겠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대통령의 지시는 곧 국민의 명령이니 믿고 행동하라’는 메시지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난 한 과장은 “1급까지 노려볼지, 민간으로 옮길지 곧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려면 줄을 잘 서거나 흠집 없이 경력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고위 공직자 중에 전문가보다 정무적 판단이 빠른 사람이 더 많고, 지난해 민간 취업심사를 신청한 공무원은 5년 전의 1.6배로 늘었다. 본업에는 소극적인 반면 인맥 관리와 재취업에는 적극적이니, ‘선택적 복지부동’이라고 해야 할까.
복지부동의 근본 원인은 국가의 주인(principal)인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리인(agent)인 공무원이 정보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일처리 과정이 대외비로 숨겨져 있으니 일을 잘못하거나 설령 안 해도 드러나지 않는다. 차기 정부 경제정책 설계도를 그리는 최상목이 먼저 할 일은 이 대리인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는 전직 관료들과 쓴 책에서 대리인 문제를 다루며 정보 공개 확대를 해법으로 언급했다. 대외비의 장막을 조금씩 걷어내는 게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과거 진보 정부는 각종 민간 위원회를 만들어 공무원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진보 정부 때 요직을 맡았던 한 관료는 보수로 정권이 바뀌자 공무원교육원에서 “뇌를 씻어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고질적인 복지부동이 꼭 관료 탓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머슴 대통령’은 일사불란한 공무원 조직을 기대하지만 적지 않은 ‘메모 공무원’은 벌써 버티기에 들어갔다. 윤 당선인은 ‘신발 속 돌멩이’를 빼는 규제개혁을 공언했지만 이런 동상이몽 상태로는 한 걸음도 떼기 어렵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