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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항공 vs 에어버스 ‘페인트 전쟁’[떴다떴다 변비행]

입력 | 2022-03-27 18:39:00





중동의 대표 항공사인 카타르항공과 유럽의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 사이가 심상치 않습니다. 카타르항공은 에어버스 항공기를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항공사입니다. 에어버스 입장에서는 ‘큰 손’ 인데요. 그런데 대형 고객인 카타르항공이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카타르항공이 보유한 에어버스의 대표적인 장거리 항공기인 A350-900의 페인트(도색)가 벗겨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도색을 하면 그만 아닐까?”하며 헤프닝으로 넘어갈수도 있었던 일이, 소송을 넘어 고객사의 등을 돌려버리게 하는 분쟁으로 번졌습니다. 카타르항공과 에어버스 사이에 이른바 ‘페인트 대전’ 이 벌어진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단순한 도색 문제인 줄 알았던 첫 시작



카타르항공은 2020년 11월 카타르 월드컵을 맞이해 항공기 외관을 예쁘게 바꾸려고 재 도색(Repainting)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5년 정도 된 A350-900 항공기 외관이 뜯겨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시만 해도 카타르항공은 도색과 관련해 약 980개의 결함이 발생했다는 정도만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사건이 점차 심각해집니다. 2021년 6월 카타르 민간항공국이 A350에 대한 운항 금지 조치를 내립니다. A350의 감항성(airworthiness, 항공기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 즉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겁니다.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 입장에서는 도색문제를 가지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겁니다.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지난해 12월 카타르항공은 에어버스를 상대로 소송을 겁니다. 카타르항공은 “A350 항공기 21대가 페인트가 벗겨지는 문제로 인해 운항을 못하는 상황(그라운딩)이E. 약 7400억 원 보상과 함께 운항 중단에 따른 피해 금액으로 하루 약 48억 원의 돈을 보상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에어버스는 “A350항공기는 표면 열화(도색이 벗겨지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행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카타르항공은 A350-900 항공기의 표면 도색이 벗겨지는 이유에 대한 납득할만한 충분한 원인 설명과 함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철저한 조사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에어버스에게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서 감항성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밝혀라”고 말한 겁니다.

그런데 A350 항공기의 도색이 벗겨지는 문제는 카타르항공 뿐 아니라 유럽의 몇몇 항공사들에게서도 나타났던 문제였습니다. 다른 항공사들은 재 도색을 해서 넘어간 문제였죠. 항공기 자체의 안전성까지는 걸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에어버스 입장에선 다른 곳은 별 말 안하는데, 유독 카타르항공만 심한 딴죽을 건다고 여길 수 도 있었겠죠.



●난타전의 시작


카타르항공 A3501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1월 20일 에어버스가 카타르항공이 주문한 A321neo 여객기 50대에 대한 거래를 취소한다고 발표합니다. 그 동안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메시지를 내지 않았던 에어버스가 카타르항공과의 페인트 도색 문제와 관련해 낸 첫 논평이었습니다. “너희와 거래하지 않겠어!”라는 강도 높은 메시지였죠.

그러자 카타르항공이 곧 바로 반격에 나섭니다. 카타르항공의 A350-900 항공기에서 발생하고 있는 도색 문제를 담은 영상을 공개한 겁니다.





그동안은 사진과 논평을 통해서 “페인트가 벗겨지는 문제가 생겼다”는 정도로만 말했는데, 적나라하게 도색이 벗겨지는 영상을 공개한 것이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했던가요. 전 세계 항공사와 항공인들에게 “우리가 무리한 주장을 하는지 일단 한번 봐!”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벗겨지고 뜯겨진 카타르 A35-900 항공기


공개된 영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항공기의 리벳(나사) 부분의 도색이 벗겨져 나가는 건 기본이고, 항공기 외관이 가뭄 든 땅처럼 갈라지고 뜯겨져 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부품과 부품 사이에는 녹슨 흔적 뿐 아니라 항공기 내부 구조물이 훤히 보일 정도로 외관이 뜯겨진 곳도 있었습니다. 만들어진지 몇 년 되지 않은 항공기 표면이 수십 년 된 자동차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처럼 돼 버린 겁니다.

항공기의 외관은 크게 3개 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항공기 동체를 감싸는 외피가 있고, 그 위를 구리로 만든 벌집 모양의 직조물(Copper mesh layer)로 덮습니다. 라이트닝(번개) 등을 맞았을 때 항공기를 보호해주는 역할입니다. 마지막으로 페인트로 도색을 합니다. 항공기 동체를 보호해주는 직조물이 드러날 정도로 페인트가 벗겨졌으면 승객들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카타르 항공은 “항공기의 낙뢰 보호 시스템이 노출돼 손상에 이를 수 있고, 항공기 구조가 습기와 자외선에 노출될 수 있으며, 각종 항공기 부품 및 동체에 손상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카타르항공 A3502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의 원인에 대해 무더운 카타르의 날씨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40도를 훌쩍 넘는 온도였다가, 하늘위로 올라가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때문에 급격한 온도차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국내 한 정비사는 “감항성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외관상 보기가 좋지 않고 승객들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국내 항공기에서도 도색이 벗겨지는 일이 발생했으면 운항을 중단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도색 자체가 비행 안전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과거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일부 항공사들은 항공기 무게를 줄여 연료비를 아끼려고 아예 도색을 벗겨내고 운항을 한 적도 있습니다.



●‘큰 손’ 카타르항공 보잉과 손잡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카타르항공이 에어버스에게 이른바 ‘한방’을 또 날립니다. 카타르항공이에어버스의 라이벌인 미국 보잉사와 화물기(B777X) 50대와 여객기 B737MAX8(맥스8) 50대 계약을 맺은 겁니다. B737 MAX8 항공기는 아시다시피 몇 년 전 항공기 추락으로 운항이 중단 됐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운항이 재개된 항공기입니다. 특히 에어버스가 주문 취소를 한 A321neo이 경쟁 모델입니다. 카타르항공의 이런 반격은 에어버스를 향한 일종의 항의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카타르항공이 유난히 이런 항의를 거세게 할 수 있는 배경도 있습니다. 카타르항공은 2014년 A350을 처음 인도한 항공사입니다. A350 항공기를 가장 많이 운용하고 있는 항공사이기도 하죠. “우리가 처음 사줬고, 가장 많이 사준 고객인데. 고객 대우를 이렇게 밖에 못해?”라고 항변을 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카타르항공과 에어버스가 완전히 등을 돌리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카타르항공이 보잉과 총 100대의 항공기 계약을 맺긴 했지만, 이 중 일부는 ‘옵션’ 계약입니다. 일단 일부는 확적적으로 인도를 받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추가로 인도를 받겠다는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에어버스와의 관계가 회복 될 경우, 옵션 주문만큼의 항공기 계약을 에어버스와 다시 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카타르항공의 절반 이상이 에어버스 항공기인 상황에서 에어버스와 완전히 갈라선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A350-900 

카타르항공은 올해 1월 20일에 영국 런던 고등법원의 기술 및 건설 부서에서 에어버스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을 냈는데요. A350 항공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동체 표면 열화 결함과 관련해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번 이슈에 대한 긴급 청문회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4월 청문회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자고 결정했죠. 이 사건의 결론은 4월 청문회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이 A350-900 항공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도색이 벗겨지는 이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