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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 사거리 1만5000km 역대최강… 美의 ‘레드라인’ 넘어

입력 | 2022-03-25 03:00:00

[北, ICBM 도발]
2017년 발사 화성-15형 성능 능가




북한이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전격 발사해 ‘핵실험·ICBM 발사 모라토리엄(중단)’을 끝내 파기했다. 40여 일 뒤 출범하는 한국의 차기 정부를 길들이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극한 대치 중인 미국을 ‘코너’로 몰아붙여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강대강(强對强) 전술로 풀이된다.
○ 화성-15형처럼 고각(高角)발사, 역대 최강 성능 실증
북한은 이날 평양 순안 일대에서 ICBM을 거의 수직으로 발사했다. 정상 각도로 쏘면 일본 등 주변국 영공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에 2017년 화성-15형처럼 고각발사를 시도한 것. ICBM은 6200km 이상 고도까지 치솟은 뒤 1시간 10분 이상을 날아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낙하했다. 비행거리는 1080km로 파악됐다. 2017년 11월 발사된 화성-15형의 정점고도(4475km) 비행거리(950km) 비행시간(53분)을 모두 넘어서는 역대 최강 성능을 실증한 것이다.

군 소식통은 “최대 사거리가 화성-15형(1만3000km)보다 긴 1만5000km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쏘면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1만5000km 사정권 안의 임의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 소멸하는 명중률을 더욱 제고해 핵 선제 및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할 데 대한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일각에선 16일 발사 직후 20km 이하 고도에서 공중 폭발한 ‘괴물 ICBM(화성-17형)’을 다시 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한미 정보당국은 괴물 ICBM과 다른 기종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밀 분석 중이다. 화성-17형이 미완성 단계여서 화성-15형이나 그 개량형을 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대 최장고도와 비행시간을 고려할 때 더 많은 탄두를 보다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한 ‘다탄두 ICBM’ 성능 테스트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또다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각 발사로는 ICBM의 재진입 기술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탄두가 실린 ICBM의 재진입체(RV)는 대기권 재진입 시 최대 음속의 20배, 섭씨 1만 도에 이르는 마찰열과 충격을 견뎌야 한다. 군 당국자는 “2017년 세 차례의 화성-14·15형 도발에 이어 이번에도 고각 발사를 한 것은 재진입 기술이 미흡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 北, 정권교체기 존재감 과시, 7차 핵실험 강행 가능성도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본격 가동된 직후 ICBM 도발이라는 최고 수위의 무력시위에 나선 것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5월 10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ICBM 도발로 긴장을 최대한 고조시켜 향후 협상을 선점하기 위한 기선제압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과거 한국의 새 정부 출범 때마다 구사한 ‘벼랑 끝 전술’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선제 핵 타격을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윤석열 새 정부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며 “향상된 핵능력 과시로 추후 핵협상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손발이 묶인 틈을 노린 측면도 크다. 미국은 자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ICBM 도발을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추가 제재는 요원한 상황이다. 미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정면대치 중인 데다 중국도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 중-러가 북한의 ICBM 발사를 묵인하면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를 결의할 수 없다.

북한이 4월 중요 국내 정치 일정을 앞두고 고강도 도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다음 달 15일 김일성의 110번째 생일 경축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에 맞춰 1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열병식 개최가 유력시된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집권 10년간의 군사 부문 성과를 과시하는 한편 한국 차기 정부 출범을 전후해 7차 핵실험까지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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