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아홉 번째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산문집을 낸 것도 ‘생에 단 한 번’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시인이 산문을 쓰는 건 ‘외도같이 느껴져’ 고집스럽게 시만 썼던 그는 14일 첫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난다)를 통해 유년시절, 고통스러웠던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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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건 별안간 죽음을 봤기 때문이었다. 2014년 건강검진에서 폐암 2기를 선고받았다. 수술을 1주일 앞두고 46년을 함께한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최 시인은 남편의 장례식 직후 수술대에 누웠다. 부작용으로 진통제도 맞을 수 없어 폐의 3분의 1을 잘라낸 고통을 맨 정신으로 받아냈다.
불과 3개월 안에 일어난 일련의 비극들을 통해 최 시인은 “죽음은 백지 한 장 너머에 있다”는 것을 통절했다. 이 깨달음은 그의 시집과 산문집에 담겼다. ‘아무도 부르지 말고 피자 꽃피자/아침에도 수선화는 그냥 그렇게 피었던 거야/격렬한 신념 같은 거 없이/이런 흰 꽃이 죽어라고 피면 죽음도 그칠 줄 알았나?…꽃꿈은/설렘이 아니고 새파란 공포인거야.’(‘수선화 감정’) 산문집엔 중환자실에서 ‘아카시아꽃’을 부르짖다 숨이 멎은 한 환자에 대한 회고도 적혔다. ‘’꽃‘자 발음을 끝까지 내지 못하고 힘없이 병상에서 미끄러지는 여자를 들어올리며 간호사는 응급이 터졌다고 소리를 질렀다… 가시가 수없이 박힌 가지에 달린 아카시아꽃을 생각하며 나는 통증을 핑계로 소리내어 울었다.’
죽음을 가까이 두니 삶을 성찰하게 됐다. 삶에 대한 성찰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회고와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최 시인은 “두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완성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했다. 산문집엔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혹시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을 발굴하지 않았다. 다 파내고 파헤쳐진 흉터 같은 폐허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누군가 총을 겨눠도 어떤 감정은 죽지 않고 푸르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에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그해/죽은 해바라기 옆에 채송화를 심고 히말라야로 갔지’.
“부모님은 나한테 기대가 컸어요. 해바라기 같이 크고 빛나는 사람이 되라 하셨죠. 근데 채송화만도 못하게 됐어요. 대학 자퇴를 했고, 가출도 했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도 했죠. 내가 아이 셋 키우면서 시도 못쓰고 최악의 시기를 지날 때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해바라기가 되는 걸 끝내 못 보시고. 여전히 부채의식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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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제목처럼 우린 늘 사랑하는 대상을 밖에다 세워놓고 끝을 맺어요. 깊이 사랑할수록 더 깊이 두려워하는 게 인간 본성인가봐요. 근데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사랑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거든요. 밖에 세워 놓은 사랑이 떠나면 전부 후회되는 거죠. 이별과 맞닥뜨렸을 때 안타깝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내 안에 다 받아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라도 아쉬움은 없다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만약’이라고 운을 뗐다. “만약 또 한 번의 시집을 낸다면, 아주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요. 이번에 쓴 것처럼 갈등으로 가득한 것 말고. 근데 그건 내 희망사항입니다. 그런 기회가 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봉지에 덜렁 넣어오기 뭐해서 오는 길에 예뻐 보이는 가방 하나 샀어요.” 시집과 산문집을 넣은 베이지색 에코백을 그가 건넸다. 올해 6월 영어로 번역된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들고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며 설레어하는 그는, 늙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며 눈을 빛내던 그는, 여전히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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