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사이 엄마와 조카가 목숨을 잃었다. 물웅덩이만 봐도 ‘그 날’이 떠오른다 알약 2만 개로 버텼던 1000일 그들은 이제 국가에 책임을 묻는다
[안인득 방화살인, 그 후 1068일의 기록]
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방문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효과가 결합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형식으로 금세은 씨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금세은 씨 손에 놓인 알약. 식사 후와 자기 전, 총 네 번에 걸쳐 한 번에 6~7개의 알약을 넘긴다.
베개에 머리만 대도 목 뒤까지 저릿해지는 편두통에 급격한 시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세은 씨는 며칠 전 같은 병원에서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다. “뇌에 문제는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2년 넘게 약을 먹었지만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쳤다. 약은 순서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전신 떨림, 두통, 호흡곤란, 불면증을 잠시 멎게 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학교병원을 찾은 금세은 씨가 주치의 김봉조 교수와 상담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플 수 있어요? 이제 내 몸한테도 화가 나.” (세은 씨)
“부작용 문제로 항우울제를 다 바꿨는데 2개월 넘게 기대하는 효과가 안 나와서…. 최근에 나온 약으로 바꿔 봅시다.” (김봉조 교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괴로운 게 해결이 안 되니 짜증 안 나는 게 이상하지. 근데 앞으로 그렇게 약 한꺼번에 먹으면 절대 안 돼요.” (김봉조 교수)
금세은 씨가 경상국립대병원 1층 약국 앞에 앉아 약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엄청 심각한 병 걸린 사람 같죠? 이게 2주치야, 2주치. 2주 뒤에 와서 이만큼 또 받아야 돼.”
주치의도 그런 세은 씨가 안쓰럽다. 김봉조 교수는 “시기에 따라 환자를 심하게 괴롭히는 증상이 달라질 뿐 처음 진료 때와 비교해 나아진 점은 없다”며 답답해했다.
금세은 씨(가운데)와 치위생사 동료들. 대학 졸업한 직후부터 치위생사로 일했던 금 씨는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주말에는 교외로 함께 놀러가며 사람들과 어울리길 즐겼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과거 사진에는 금 씨 요청에 따라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게 180도 변했어. 지금은 사람을 보자마자 꺼리기부터 하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지금은 내 자신이 바보 같아.”
‘엄마는 내 삶의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끔찍한 효녀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3남매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편히 사는 게 세은 씨의 소원이었다. 엄마를 위해 세은 씨는 스물세 살부터 마흔 살까지 17년을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다 갚아가고 있었다.
“가족 위해서 고생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해외여행도 가고 좋은 옷 입고 편하게 살길 바랐지. 우리는 영세민이잖아. 빚 갚으면서, 그 와중에 되는대로 돈 모으면서 열심히 살았어. ‘엄마, 이제 (통장) 플러스 된다. 조매만 기다려라. 한두 달 안 남았다’했는데….”
자칭 ‘일벌레’이자 효녀였던 세은 씨는 2019년 4월 17일,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2019년 4월 17일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주민들을 공격한 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A아파트 303동 복도. 금세은 씨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복도 전체는 연기로 가득했다.
“지금 아파트가 피바다에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곧 죽을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신고를 마치고 비상계단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3층과 2층 사이엔 507호 주민 조모 씨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조 씨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3층을 지나 2층 계단으로까지 뚝뚝 떨어졌다. 그와 눈이 마주친 세은 씨는 몸에 수건을 덮어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을 전혀 움직이질 못했지. 그 상태로 나랑 눈이 마주친 거야.”
금세은 씨의 엄마와, 조카 지윤 양이 눕혀져 있던 A아파트 303동 앞.
“우리 조카는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근데 구조대원들이 지혈을 안 해. 지혈을 안 하니 피가 펑펑 나는 거야. 목에서도 나고 팔에도 나고. 내가 “지혈 안 하고 뭐 하냐”고 하니까 엄마 지혈을 (소방대원이) 저보고 도와 달래.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지혈을 하는데 지혈이 안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
세은 씨는 지금도 자신의 손 안에서 온기를 잃어 가던 어머니의 피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304호에 살았던 세은 씨와 엄마, 403호에 살았던 오빠 민수 씨네 가족은 1주일에 두 세 번은 함께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은 틀림없이 모였다. 땡초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와 감자전, 삼겹살, 두루치기는 단골 메뉴였다.
“비 오는 날 제가 ‘언니(올케), 비와요. 땡초전 묵으까?’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얼마 안 있어 새언니한테 전화가 와요. ”땡초 사오라.“ 그럼 퇴근길에 슈퍼 들러서 밀가루랑 땡초랑 맥주 사서 가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는데…”
금세은 씨 스마트폰 앨범에는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폴더가 있다. 엄마와 조카 지윤 양의 사진이 저장된 폴더다. 손으로 브이를 그리는 지윤 양의 사진을 보던 금 씨는 “우리 지윤이 너무 귀엽죠?”라며 쓸쓸히 웃었다.
“아파트 복도에 창문이 없으니 비가 오면 다 들쳐요. 이사 오고 얼마 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어요.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물이 가득한 거야. 그걸 보는 순간 그날 복도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어요.”
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년 간 했던 치위생사 일도 그만 둬야 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 냄새를 맡으면 우리 엄마 응급처치 하면서 피가 펑펑 나던 그 모습이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
금세은 씨가 회사 근처 건물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불치병인 것 같아요. 100미터만 걸어도 숨 차하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요. 식당 갔다 공황발작이 오기도 하고…. 당당하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모든 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거죠.”
김 씨는 세은 씨가 순간순간 기억을 잃는 증상을 가장 걱정한다. 주치의는 PTSD로 인한 해리성 기억장애라고 진단했다. 처음은 건망증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을 갔던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지난해 8월에는 비 오는 날 한밤중에 두 시간동안 비를 맞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세은 씨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 한다. 자정 무렵 오빠 네에서 밥을 먹고 대리를 불러 집에 간다던 세은 씨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세은 씨 지인에게 연락을 돌리고 아파트 주변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에야 집 근처에서 비를 맞으며 멍한 눈으로 걷는 세은 씨를 발견했다. “세은아!”라고 불렀지만 세은 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김 씨 부축을 받아 집에 돌아온 세은 씨는 목 놓아 울었다.
“증거 남기듯 사진을 찍는 게 습관이 됐어요. 어디 갔었는지도 기억 못 할 때가 있으니까 사진 보여주며 ‘우리 여기 갔었잖아’ 하려고. 둘 다 사진 찍는 것 정말 싫어하는데 계속 연습을 해요.” (김 씨)
세은 씨의 오빠 민수 씨와 그의 아내, 첫째 딸은 2019년 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이 잘못 돼서 온 가족에게 이런 비극이 닥쳤나’ 하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명을 택했다. 늘 아빠 옆에서 잠을 자던 둘째 딸 지윤이,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 끓여놨다고 전화하던 어머니가 없다는 현실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수 씨의 삶은 여전히 4월 17일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그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같은 층에 살았던 민수 씨네 집 현관으로 이내 연기가 슬금슬금 넘어왔다. 민수 씨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수영선수인 첫째 딸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 집에 없었다.
금민수 씨의 어머니와 딸이 쓰러져있던 아파트 비상계단. 민수 씨는 두 사람을 업어 1층으로 옮겼다.
“불이 나서 가족들을 내려 보냈는데 애하고 할매(어머니)가 누워 있어.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연기 빼고 창문 열고, 불났다고 문 두드리고…. 그게 제일 큰 실수라. 내가 미친놈이지.”
언니 금모 양(19)은 사건 1년이 지나고서야 가족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차 씨가 금 양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던 일요일이었다. 방에서 짐을 챙기는 금 양의 눈이 벌겠다. “울었나?” 묻는 엄마의 질문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차 안에서도 묵묵부답이던 금 양은 기숙사 앞에서 “도대체 왜, 뭐 땜에 그카노?”라는 엄마의 질문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 운동장 뛸 때도 생각나고, 수영할 때도 생각나고, 밥 먹을 때도 생각난다. 그래서 미치겠다. 너무 힘들고 너무 보고 싶다. 미치겠다, 엄마.”
“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과자를 보따리로 사 주고 한 놈이라.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내가 ‘밥 묵었나’ 하면 ‘예’ 하며 지냈어. 근데 조현병이 심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 본 기라.”
동생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안인득의 형은 민수 씨에게 ‘고함지르는 소리 안 들리드나?’ ‘시끄러운 일은 없었나?’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술자리에선 “동생이 아픈데 약을 안 먹는다”며 걱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엔 동생이 집에 있으면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가면 문도 안 열어준다. 집에 있는지 확인해보고, 있으면 전화 좀 주라.”
형은 걱정을 하면서도 동생이 조현병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민수 씨는 “알겠다”고 하고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약도 먹지 않고 입원도 거부하는 동생을 두고 형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수개월 동안 주민들은 안인득의 오물투척, 폭행, 폭언 등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
안인득이 살았던 A아파트. 아파트 주민들은 사건 수개월 전부터 안인득의 오물 투척, 욕설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직접 위협도 일삼았다. 2019년 2월 28일, 안인득이 출근을 하는 강 씨에게 계란을 던지고 욕설을 했다. 강 씨는 신고했지만 경찰은 “임대아파트라 이런 신고가 많다. 화해하라”고만 한 뒤 돌아갔다.
3월 10일, 안인득은 주차 시비가 붙은 사람의 얼굴을 가격하고 망치를 휘둘러 특수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형은 경찰에 “동생이 정신병력이 있다”고 알렸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안인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3월 12일과 13일, 안인득은 이틀 연달아 최 양을 따라가며 욕을 했다. 집에 들어가는 최 양을 뒤따라가 초인종까지 눌렀다. 최 양은 1급 시각장애로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뇌병변 장애로 몸의 반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고등학생이었다. 13일 강 씨가 경찰에 재차 신고해 “안인득이 더 이상 이런 짓을 못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안인득에 구두 경고를 주는데 그쳤다.
3월 말 안인득은 진주의 한 주방용품점에서 흉기를 샀다. 사건 당일 그가 주민들에게 휘두른 것과 같은 흉기였다.
형은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이 됐다. 4월 4, 5일 이틀에 걸쳐 안인득을 입건했던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동생을 강제입원 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니 검사에게 문의하라”고 답했다. 검찰청 민원실도 책임을 떠넘겼다. 직원은 “검사를 만나더라도 강제입원은 어렵다”며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법률구조공단은 “행정기관이 처리해야 한다. 동사무소나 시청으로 가라”고 했다. 동사무소에서는 “강제입원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건 당일인 4월 17일, 자정이 넘은 시간 안인득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샀다. 3시간 반 뒤, 안인득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안인득에게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최 양은 그날 안인득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세은 씨의 조카이자 민수 씨의 딸도, 두 사람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민수 씨는 딸과 엄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원망할 수 없었다. 분노와 설움은 스스로를 향했다. 하루에 소주를 6병 씩 비우는 날이 허다했다. 사건 직후 1년은 술과 정신과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매일을 보냈다.
사건 후 나라가 피해자이자 유족인 세은 씨와 민수 씨에게 진 책임은 치료비 5000만 원이 전부다. 방화죄, 살인죄, 상해죄 등 강력범죄피해자는 연 1500만 원, 총 5000만 원 한도에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살해된 조카를 구하려다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506호 강 씨는 수술과 재활치료가 이어져 이미 5000만 원을 다 썼다. 강 씨의 딸은 때때로 전화로 안부를 묻는 세은 씨에게 늘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정신과 상담하고 약 먹으면 돼요. 근데 506호 살던 숙모는 뇌수술을 또 해야 할 수도 있고, 손에 감각이 안 돌아와서 재활치료도 계속 받아야 한대요. 그런 분들은 치료비를 평생 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라에선 그 조차도 안 된다고 하대요.”
금세은 씨가 사건 발생 후 진주경찰서에서 배포한 진상조사결과보고서를 읽고 있다. 금 씨는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자들이 가볍게 처벌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고 말했다.
잊지 않으면 고통스러웠다. 잊을 수가 없어 술에 기댔다. 세은 씨와 민수 씨가 일상을 잃고 시간의 흐름도 잊어가던 2020년 봄, 그들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한신경정신학회였다. 조현병 환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학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선 상태였다.
학회는 이들에게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 달라고 설득했다. 정신질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1년을 꼬박 고민했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돈 때문에 소송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
하지만 금 씨 남매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그 사람들, 그냥 정신이 아픈 사람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돼 있었던 게 잘못이지. 약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그 사람 가족까지 죄인이 되는 거고. 그걸 왜 못 막느냐는 거지. 안인득도 피해자다. 안인득 형도 피해자고.” (민수 씨)
금 씨 남매는 국가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법과치유는 지난해 11월 8월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행정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발생 2년 7개월 만이다. 원고는 민수 씨 남매 세 명, 민수 씨의 아내 차 씨 등 4명이다. 소송의 요지는 경찰이 법에 명시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범죄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조금 괜찮아져서 소송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민수 씨는 말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소송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억울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금세은 씨가 홀로 집 거실에 앉아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공황발작이 찾아오는 탓에 집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중 ‘행정입원’은 경찰이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요원에게 요청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지자체장이 절차를 거쳐 최장 2주 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긴급한 상황에는 경찰관과 의사 동의 아래 최장 3일 간 환자를 입원시킨 뒤 계속 입원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응급입원’ 제도도 있다.
안인득은 △타인에게 위협을 가한 전력이 있고 △폭행, 욕설 등 공격적 성향이 지속된 경우로 행정입원이나 응급입원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이었다.
비자의 입원 중 행정입원은 유명무실하다. 행정입원에는 전문의 진단이 필요한데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사람을 전문의에게 강제로 호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응급입원은 요건이 더 까다롭다. 자·타해 위험이 크고, 상황이 급박해 다른 입원절차가 불가능할 때만 가능하다. 당장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경찰이 인권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응급입원 절차를 밟기 어렵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이 입원시키도록 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길이기 때문에 행정입원은 입원시킬 가족이 마땅치 않은 경우로 제한된다. 응급입원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해 활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까다로운 절차 탓에 현장에서는 대부분 ‘보호입원’이 활용된다. 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이 전체 비자의 입원의 80~90%를 차지한다. 보호입원은 가족 중에서도 직계혈족, 배우자, 민법상 후견인 중 2명이 신청하고 의사 진단이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직계혈족이나 배우자가 없는 경우 적용이 불가능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한국 현실에서 점점 더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학회 법제이사는 “노부모 중 한 명과 살거나 직계 가족이 없는 조현병 환자들이 사각지대”라며 “1인 가구가 늘며 정신질환자를 보살펴줄 가족이 없어지고 있다.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지는 ‘국가책임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주경찰서와 소방서, 시청 등은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사건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에 대한 사후 관리를 약속했다. 금 씨는 “관련 서류들을 모두 모아 놨지만 제대로 실행된 게 없다”고 했다.
일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법원이 입원을 결정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보장되고, 환자 본인이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의사를 법정에서 표현할 수 있는 절차도 포함돼 있다. 이동진 교수는 “비자의 입원은 강제조치인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주도하고, 그 안에서 본인과 가족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래치료명령제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자체장이 정신의료기관장의 청구를 받아 비자의 입원 환자가 퇴원하는 대신 최장 1년까지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제도다. 퇴원한 환자가 아니더라도 의사 판단으로 위험한 환자는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도 어쩔 수 없는 경우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그런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박환갑 사무국장은 “비자의 입원이 필요한 수준까지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상담하고 외래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입원시키는 조치는 필요하지만, 폭력적인 병원 이송 과정, 환자를 폐쇄병동에서 강제로 치료하는 방식 등 문제점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11일 A아파트를 찾은 금세은 씨가 사건이 발생했던 303동을 바라보고 있다.
“추석, 설날 때마다 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니까…”
지난해 11월 11일 아파트를 찾은 금 씨는 아파트 정문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사건이 발생했던 303동을 향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저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요. 나 여기선 모자도 절대 안 벗어요.”
아파트 입구 벤치에 앉은 금세은 씨는 벙거지 모자를 쓴 채 303동을 바라봤다. 그러다 핸드폰에 저장된 엄마의 사진을 한참동안 봤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사진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입구에 쓰러져 있던 사진은 없어. 나라도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게 사진이라도 찍을 걸…”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피지로 유학을 간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이제 진짜 숙녀 같다, 숙녀. 다 컸네.”
세은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깨를 훌쩍 넘긴 머리를 매만지는 딸의 모습이 세은 씨는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어느덧 13살이 된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현재 건강 상태로는 딸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세은 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딸과 함께 살면서 좋아했던 치위생사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라도 몸이 버텨줬으면 좋겠어. 지금 몸 상태로는 운전도 제대로 못 하니까.”
지난해 11월 11일 A아파트를 찾은 금세은 씨. 손이 떨리고 눈물이 맺혔다.
1000일이 지나도록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세은 씨에게는 키워야 할 딸이 있고,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야 할 가족이 있다.
오늘도 세은 씨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00일 분의 고통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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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기사 취재 : 김재희 남건우 신희철 기자
▽사진·동영상 취재 : 송은석 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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