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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산부인과-어린이병원 폭격… “우크라 마리우폴은 생지옥”

입력 | 2022-03-11 03:00:00

젤렌스키 “어린이들이 잔해에 깔려” 비행금지구역 설정 거듭 요청
교황청도 “있을 수 없는 일” 비판…보급로 끊긴 마리우폴 40만명 고립
러 크렘린궁은 민간인 공습 부인…美 “러의 생화학무기 사용 경계해야”



러 폭격에 부상당한 만삭의 임부 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구조요원들이 남부 마리우폴의 산부인과병원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심한 부상을 입은 만삭의 임부를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병원 폭격으로 최소 17명이 다치는 등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마리우폴=AP 뉴시스


만삭의 임신부들이 시커먼 재가 날리는 길바닥에 누웠다. 산부인과병원은 쑥대밭이 됐다. 재로 뒤덮인 침대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인근 어린이병원 건물도 파괴됐다. 파편에 다친 머리를 붕대로 감은 의료진이 병실에서 남은 의료 기구를 옮겼다.

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군 군용기가 산부인과와 어린이병원까지 폭격하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마리우폴 시의회는 참상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하며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산부인과·어린이병원을 공격해 어린 소녀를 포함해 최소3명이 숨지고 임산부 등 17명이 다쳤다”고 규탄했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늘어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후 가장 암울한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날 마리우폴 도심에서는 지름 25m로 판 구덩이에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숨진 시신 30∼40구가 집단으로 묻혔다.


○ “병원 폭격에 어린이들 잔해에 깔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병원까지 폭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어린이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있다”며 분노하면서 서방에 우크라이나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요구했다. 교황청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세르히 오를로우 마리우폴 부시장은 “침공 후 지금까지 최소 1207명이 숨졌다”며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 가동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10일째 고립된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이 보급로를 끊어 식량과 의약품이 바닥났고, 난방과 전기도 끊겨 신생아 3000여 명이 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러시아가 마리우폴 시민 40만 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일부를 장악한 남동부 돈바스 지역과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남부 회랑’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수도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100km 거리인 지토미르시도 이날 “병원 2곳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러시아 침공 이후 의료시설 공격은 총 18번 발생했다. 주민 야로슬라바 카민스크 씨는 미 CNN에 “이건 전쟁이 아니라 말살”이라며 절규했다.

크렘린궁은 민간인 공습을 부인하며 병원 내부에 우크라이나군이 숨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인권 침해, 전쟁범죄 증거를 모아 공개하는 웹사이트 개설 계획을 발표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 증거들은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에서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 우크라-러 회담 합의 실패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에 “러시아의 생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러시아군이 점령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이어 자포리자 원전에서도 핵물질 상태를 점검하는 원격 모니터링 통신이 두절됐다며 방사성물질 누출을 우려했다.

10일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교장관 간 휴전 협상에서는 뚜렷한 진전은 없었지만 대화는 이어가기로 했다. 회담 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군사작전을 지속할 것”이라면서도 “협상을 대체할 더 나은 방법은 없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휴전을 원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항복하지 않고 계속 싸울 것”이라면서도 “이번 같은 형식으로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