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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예바의 연기에 침묵한 중계 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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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를 기다리며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발리예바는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82.16점으로 30명의 출전 선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작성한 쇼트프로그램 최고점수인 90.45점에는 많이 모자랐다. 기쁜 내색도 없이 곧장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으로 향했다. 수많은 취재진들 앞에서 그는 어떠한 인터뷰도 거절한 채 싸늘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만 말한 채 사라졌다. 이날 1위부터 3위까지 참가하는 기자회견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많은 중계에서 그의 연기는 사라졌다. 국내 방송 3사는 발리예바의 연기 때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보통 기술 설명이나 점프를 잘 했는지 못했는지 등을 말한다. 하지만 발리예바가 없는 듯 철저하게 무시했다. 미국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의 해설을 맡은 타라 리핀스키와 조니 위어도 발리예바의 연기 때 침묵으로 일관했다. 발리예바의 연기 뒤 리핀스키는 “그녀는 금지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고 우리는 이 경기를 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잊혀져 버린 여자 피겨 29명의 선수들
발리예바의 개인전 출전 강행으로 소외되는 것은 다름 아닌 공정하게 겨루고 있는 29명의 여자 피겨 선수들이다. 이미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선수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선수들의 소외감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보통 선수였다면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순간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만 16세 이하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규정 덕분에 29명의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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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전만 해도 발리예바의 금메달은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금메달을 따도 그 누구도 발리예바가 시상대에 서거나,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이번 올림픽에서 보지 못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발리예바가 메달을 딴다면 시상대에 세우지 않겠다고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상식도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메달을 딴 다른 선수들은 기록에만 남을 뿐 시상식도 없이 올림픽을 떠나야 한다. 피겨 단체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과 일본 피겨 선수단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사람들의 기억에는 발리예바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공정하게 경쟁하고자 했던 29명의 선수들의 존재는 꼭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