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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여자 스티브 잡스’ 벤처 사업가의 추락

입력 | 2022-01-14 03:00:00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칭송받던 미국의 여성 사업가가 사기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테라노스’라는 바이오벤처 회사를 만들어 엄청난 주목을 받던 엘리자베스 홈스(38·사진)입니다.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배심원단은 기소된 홈스의 사기, 공모 등 4건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의 주인공인 홈스는 열아홉 살이던 2003년 스탠퍼드대를 중퇴하고 테라노스를 설립했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혈액 몇 방울로 암을 비롯한 200가지 이상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성 스타트업 창업자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더욱 집중됐습니다. 언론은 그녀에게 ‘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홈스와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젊은 나이에 벤처회사를 창업했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실제로 홈스는 스티브 잡스를 연상하게 하는 검은 터틀넥 셔츠를 즐겨 입었습니다.

테라노스는 9억4500만 달러(약 1조127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정·재계의 거물들이 이 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테라노스 이사진에는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홈스는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과 어울렸고 그들 모임에서 떠오르는 별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테라노스의 진단 기술이 사기에 불과하다는 내부고발이 나오면서 성공 신화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은 탐사보도를 통해 그들이 개발했다는 기계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제로는 외부에서 사용하는 혈액 검사 기계를 이용한다고 폭로했습니다.

2018년 검찰은 홈스와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관행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낙관적”이라며 “결과적으로 홈스와 테라노스는 실리콘밸리가 낳은 산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홈스는 죗값을 치르겠지만 테라노스를 믿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는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이 각종 리스크로 시끄럽습니다. 오스템임플란트 자금담당 직원의 횡령 사건, 카카오페이 대표와 임원진의 주식매각 논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에 해당 기업의 주가는 출렁였습니다.

ESG(환경, 지속가능성, 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는 가운데,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G(거버넌스)’는 기업의 경쟁력이 될 수도,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주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윤리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