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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 CCTV에 찍히고 경보 울렸는데…22사단 또 경계실패

입력 | 2022-01-03 03:00:00

새해 첫날 ‘철책 월북’…軍, 3시간 동안 몰랐다
1명 동부전선 DMZ 넘어 월북…작년 ‘오리발 귀순’ 부대 또 뚫려




강원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우리 국민으로 추정되는 1명이 1일 월북(越北)한 것으로 드러났다. 월책 당시 그는 군 과학화경계시스템에 포착됐지만 해당 부대는 이를 3시간가량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북한 남성의 ‘오리발 귀순’ 이후 11개월 만에 동일한 22사단에서 ‘월책 월북’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비태세를 강화하겠다던 군의 공언이 또다시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군에 따르면 22사단은 1일 오후 9시 20분경 신원 미상의 A 씨를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좌측 보급로 일대에서 열상감시장비(TOD)로 포착했다. 22사단은 후속 조치 과정에서 오후 6시 40분경 A 씨가 최전방경계부대(GOP) 철책을 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A 씨가 GOP 철책을 넘은 뒤 3시간가량 경계가 뚫린 상황을 몰랐고 월북을 막지도 못한 것이다. A 씨는 북쪽으로 수백 m 떨어진 군사분계선(MDL)을 오후 10시 40분경 넘어갔다. A 씨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군은 2일 오전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우리 국민 보호 차원의 대북통지문을 발송했다.

철책 감지센서 작동해 조치반 출동…훼손 흔적없자 사단 보고없이 종결
노크-월책-오리발 귀순 이은 ‘구멍’

현재까지 월북자 생사확인 안돼…北, 2년전 서해선 방역 내세워 사살



1일 강원도에서 발생한 월북(越北) 사건은 전방 폐쇄회로(CC)TV와 철책 감지센서 등이 제대로 작동했음에도 근무 태세 및 초동조치 부실로 3시간 남짓한 골든타임을 놓친 인재(人災)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2012년 ‘노크 귀순’과 2020년 ‘월책 귀순’, 지난해 ‘오리발 귀순’ 사건이 벌어진 22사단에서 또다시 경계 실패가 드러나면서 대북 감시망의 최전선인 군 전방 경계시스템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꼴이 됐다. 이번 사건은 서욱 국방부 장관이 새해 첫날 한반도 전역 대비태세를 점검하면서 21사단 최전방경계부대(GOP) 대대장에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임무수행을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당일 벌어졌다.


‘작전통’ 사단장까지 앉혔지만 11개월 만에 경계 실패

군 당국은 1일 신원 미상의 A 씨가 오후 6시 40분경 GOP 철책을 넘었다는 사실을 약 3시간 뒤인 오후 9시 20분경 파악했다. A 씨가 GOP 철책을 넘어 비무장지대(DMZ) 내 우리 군 감시초소(GP) 보급로 일대에서 배회하는 걸 포착한 뒤에야 이를 알게 된 것. 이 지점으로부터 남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철책 CCTV 영상을 되돌려본 결과 A 씨의 월책 장면은 상당히 선명하게 찍혀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철책을 넘을 당시 감지센서(광망)도 작동했다. 현장에 신속조치반이 출동했지만 경보가 울린 시간대의 감시장비 영상을 GOP 근무자들이 정확히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철책에 훼손 흔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상 없음’으로 상황을 종료했던 것이다. 당시 조치 상황은 사단이나 연대에도 보고되지 않고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책을 넘은 4시간 뒤인 오후 10시 40분 A 씨는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군 관계자는 “경보가 울리자마자 감시장비 영상들을 상황실에서 제대로 되돌려 봤으면 A 씨가 MDL을 넘기 전에 충분히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2020년 11월엔 체조 선수 경력을 지닌 북한 남성이 GOP 철책을 넘었지만 광망이 작동하지 않아 14시간 반 동안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논란이 됐다. 지난해 2월 북한 남성이 오리발을 착용하고 동해를 헤엄쳐 귀순했을 때도 CCTV로 10차례나 그를 포착하고도 6시간 넘게 전방지역을 활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험준한 산악지형과 길게 뻗은 해안을 함께 경계하는 22사단은 경계 실패가 끊이지 않아 지휘관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합동참모본부 작전1처장 등을 역임한 작전 전문가 이승오 소장을 22사단장에 임명했지만 불과 11개월 만에 재발한 경계 실패를 막지 못했다.

전방지역 00부대 휴전선 철책에서 새로 설치된 광망을 점검하고 있는 병사들. 병력 중심의 최전방 경계태세를 첨단 과학장비로 개편하고 있지만, 총체적인 전방 경계시스템을 수정하지 않는 한 재발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2019/03/13 사진공동취재단



9·19 군사합의로 병력 철수한 GP 유유히 통과

이번 월북 사건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킨 ‘369GP’ 일대에서 발생했다. 당시 남북은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GP 11개를 우선 철수하면서 이 GP는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되 원형을 보존했다. A 씨가 열상감시장비(TOD)에 포착된 GP 보급로 일대는 북한군 GP와 500여 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군 안팎에선 GP에 병력이 있었다면 월북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군은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인 2일까지도 A 씨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앞서 북한은 2020년 9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북측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을 사살할 당시 해당 조치가 ‘국가 비상 방역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참 관계자는 “월북 이후 (북측 지역에서) 미상 인원 4명이 식별됐다. 월북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지는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