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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떨어져 다쳤는데 “흔한일이다”…관리사각 베이비시터

입력 | 2022-01-02 14:15:00


서울시 강서구에서 4개월 된 쌍둥이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 최모(38)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복직을 앞두고 고용한 경력 8년의 베이비시터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던 중 아기를 바닥에 떨어뜨린 것. 급히 구급차로 이송된 아기는 ‘골절은 없지만 추후 지연성 출혈이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최씨가 베이비시터를 알선한 민간업체에 사고를 알리자 돌아온 대답은 “흔한 사고다, 보험처리를 해주겠다”였다. 베이비시터의 경력증명서 요구도 거절당했다. 며칠 뒤 최씨는 지역맘카페를 통해 해당 베이비시터가 사고 일주일 만에 다른 가정에서 면접을 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아기를 죽일 수도 있는 사고를 내고도 버젓이 다른 집에 면접을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는 사람이 경력 8년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워킹맘들은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공공 아이돌봄서비스를 찾는다. 그러나 자격을 갖춘 아이돌보미는 극소수에 불과해 결국 대부분 가정이 민간업체를 통해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문제는 이런 민간 베이비시터가 정부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조차 없어 전체 베이비시터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2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는 아이돌보미 자격을 제도화해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반면 대다수의 민간업체는 자격증을 갖췄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는 등록민간자격에 해당하지만, 개인·법인·단체 등 미등록 자격증을 발급하는 곳도 10여 곳에 달한다. 발급 기관별로 시험과목과 합격기준도 제각각이다.

베이비시터 인력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업체 측은 학부모의 경력증명서나 이력서 요구를 거부하기 일쑤다. 학부모들은 해당 베이비시터의 경력이 진짜인지, 사고전력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고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해외의 경우 민간 베이비시터라도 최소한의 신원조회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영국은 민간 베이비시터도 교육기준청에 활동 이력과 범죄 경력을 등록해야 한다. 독일은 지역 아동청이 전담 감독하며, 일본도 정부가 베이비시터 소개업체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지문등록을 통해 신원과 범죄전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민간 베이비시터를 제도 내로 편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3년 민간시터의 교육 과정 등 관련 제도 개선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민간업체의 신고·등록제, 베이비시터 의무교육 등이 담겼으나 정책에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지난 2017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육아도우미 제도 정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부가 소개업체를 관리해 폭리를 막고, 베이비시터의 신원과 경력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달라는 내용이다. 민간 베이비시터 관리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허민숙 여성학 박사(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공공영역에 준하는 인력 관리 기준을 민간 베이비시터에도 적용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관리하는 방안이 있다”며 “베이비시터 등록제 시행을 통해 아동 보호자에게 최소한의 신원을 확인시켜 주는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돌봄·육아 주무부처인 여가부는 아이돌봄지원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범죄를 저지른 경우 자격이 취소되고, 범죄전력조회도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지난해 베이비시터의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진 후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다.

그러나 자격취소는 등록된 공공 아이돌보미가 대상이고, 범죄전력조회는 베이비시터 본인만 신청이 가능하다. 학부모는 범죄전력조회 및 신원확인 증명을 할 수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단 지적이 제기된다.

여가부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부모님이 베이비시터에게 신원확인과 범죄전력조회를 요구하면 베이비시터가 직접 신청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다”며 “외부에서 강제하기보다 시장의 자정능력을 통해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비시터 등록제에 대해서는 “신원확인을 의무화하면 활동 자체를 제한하거나 직업을 불법화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며 “사적 영역으로 존중할 것인지, 공공의 영역으로 포함시킬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내놨다.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돌봄서비스 시장에 과도한 규제를 했다가는 베이비시터 공급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가부는 내년 범죄전력조회 시행 이후 평가를 통해 제도를 내실화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