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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제2의 군함도’ 사도광산

입력 | 2021-12-30 03:00:00


충남 논산의 임태호 씨는 스무 살 때 일제 징용에 니가타현 사도(佐渡)섬의 광산으로 끌려갔다. 매일 새벽 함바(노동자 숙소)로부터 험한 산길을 1시간 30분 걸어야 나오는 광산이었다. 직할 병원이 있었지만 온갖 부상에도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결국 섬에서 도망쳐 사도광산 생존자로는 유일하게 구술 기록을 남겼다. 그에겐 죽음의 노역장이던 이곳이 28일 일본 문화심의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됐다.

▷1601년 발굴된 사도광산은 1989년까지 운영된 일본 최고(最古) 광산으로 에도 시대엔 도쿠가와 막부의 금고 역할을 했다. 니가타현은 이 시절의 금광임을 강조하지만 태평양전쟁 무렵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이었고 대부분 유적도 이와 관계된 시설물들이다. 얼마 전엔 최소 1141명의 조선인이 이곳에서 노역했다는 일본 정부 문서가 공개됐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 추천서 요약본에는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이 빠져 있어 군함도(端島·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와 같이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인 광부들은 형식적으론 청부업자를 통하거나 직접 고용됐지만 실제로는 강제노역이었다. 사도광업소 기록에는 1943년 6월 기준 조선인 광부 1005명이 들어와 이 중 148명(14.7%)이 ‘도주’한 것으로 나온다. ‘퇴사’가 아닌 ‘도주’로 집계했다는 건 강제노역임을 자인하는 증거다. 조선인 1인당 평균 월급은 80엔 안팎이었으나 각종 물품비와 보험료를 공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됐고 그나마 강제저축을 했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전비 충당, 그리고 도주를 막기 위해서였다.(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고서)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로 판정한 218만여 명 중 사도광산 피해자는 148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73명이 진폐증과 폐질환 같은 후유증을 앓았다. 사망자는 9명(사망률 6%)으로 일본 전 지역 조선인 노무자 사망률(0.9%)보다 높다. 1945년 광복의 날 사도광산엔 조선인 244명이 남아 있었다. 사도광산은 긴급회의를 열었는데 안건은 이들의 귀국이 아니라 ‘패전으로 인한 가동률 저하 방지 방안’이었다.

▷일본은 1932년 강제노동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노동협약 29호를 비준했다. 국내에선 올 2월에야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일본이 89년 빨랐다. 그런데 군함도도 사도광산도 전쟁을 위해 스스로 비준한 국제협약을 위반하더니 이제는 그 사실마저 외면하려 한다. 근대화에선 앞서간 나라가 언제까지 후진적 역사 인식에 발목 잡혀 있을 건가. 강제노역의 역사를 뺀 사도광산은 세계유산의 자격이 없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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