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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5·18 사과 없이 사망

입력 | 2021-11-24 03:00:00

12·12쿠데타 주도-5·18 유혈진압, 신군부 독재… 민주화운동 탄압
내란죄로 실형, 추징금 미납 논란… 靑 “진실 못 밝혀 유감” 조문 않기로
장례는 가족장… 국립묘지 안장 배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향년 90세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진은 올해 8월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전 전 대통령 모습. 광주=사진공동취재단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경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화장실을 가다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오전 9시 12분경 전 전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올 8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병원과 자택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 왔다.

전 전 대통령은 굴곡 많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섰던 ‘문제적 인물’이다. 군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한 뒤 1979년 12·12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고,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유혈 진압했다. 집권한 뒤에는 철권통치로 민주화를 막았다. 국민들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맞서자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고 퇴임 뒤 백담사로 향했다.

전 전 대통령은 거액의 비자금과 내란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구속 수감 2년 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이후에도 반성이나 사죄와는 담을 쌓은 채 “예금이 29만 원밖에 없다” 발언, 추징금 미납, 5·18 발포 명령 부인 등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권위주의 독재 정권의 장본인인 그의 사망으로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의 한 단락이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끝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발포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눈을 감으면서 그에 대한 단죄는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족들을 통해 수차례 사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 사망 직후 기자들과 만나 5·18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남긴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무조건 사죄하라고 그러면 그게 질문이 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전 전 대통령은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 원 중 23일 현재 956억 원(43%)을 미납했다. 추징금은 상속되지 않아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사망하면 집행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제3자 명의로 숨겨둔 재산 등에 대해선 추징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어 검찰은 관련 법리를 검토 중이다.

5·18기념재단 등 5·18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죽음으로 진실을 묻을 수는 없다”며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이 학살 책임자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역사적 심판’이 되길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으며 장례는 국가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국가보훈처는 “내란죄 등의 실형을 받았기 때문에 국립묘지법상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선 후보 및 당 대표들은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의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 씨와 아들 재국 재용 재만 씨, 딸 효선 씨 등이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