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사전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지은의 작품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예컨대 작품 ‘쓸모없는 사전’(2020년)이 그렇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백과사전에 집중했다. 사전마저 버리면 과거를 기억할 고리가 끊기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선물 받은 30권짜리 백과사전 중 제1권의 11쪽부터 640쪽까지 있는 모든 문항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칠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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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허물기
생각 허물기
주변에서는 모두 작가를 걱정했다. ‘왜 칠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작가는 “나도 모르겠어. 칠하고 싶고, 다 칠해야만 왜 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1권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그저 즐거웠다. 그럼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29권을 보고는 “나는 돈을 포기했나보다. 앞으로 29년간 갖고 놀 장난감 하나 생겨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난스레 웃었지만, 별 볼일 없는 현상을 관심 있게 보려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너 안에 나
너 안에 나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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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