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의 시간 속으로/윌리엄 글래슬리 지음·이지민 옮김/252쪽·1만6000원·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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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 경건한 마음으로 암벽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석류석 덩이가 손가락 끝에 단단하게 부딪히는 감촉을 느끼며 내 손길이 신성모독인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린란드에서 특별한 암벽을 찾아냈을 때의 감흥을 미국 지질학자인 저자가 이 책에 묘사한 대목이다. 붉은색 석류석과 검은 흑연 조각이 뒤섞여 햇볕에 반짝이는 암벽을 보며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피해 달려간 언덕을 떠올린다.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 그는 카메라마저 내려놓은 채 풍경 자체에 깊숙이 빠져든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래전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 둘 다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세상의 끝, 동토의 자연을 시적 언어로 노래한다. 차이라면 한 사람은 사진가이고 다른 이는 지질학자라는 점이다. 사방휘석, 섭입, 근원암 등 지질학 전문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서정적인 자연 에세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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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들은 그린란드 해안 절벽에서 대륙 충돌의 흔적을 발견해낸다. ‘베개 현무암’으로 불리는 변형된 화산암 조각을 찾은 것. 이는 두 개의 대륙지각이 충돌하기 전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해저지층의 존재를 시사한다. 충돌 직후 맨틀을 향해 땅속 250km 깊이까지 묻혔다가 다시 지표로 올라온 암석의 긴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자연의 엄청난 스케일이 조그마한 암석에 숨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롭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