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속 책방 차린 박훌륭 약사 3년 전부터 서적 진열하고 판매 약국서 북토크 열고 직접 책배달도 “웃기 힘든 날들속 행복 나누고파”
박훌륭 약사가 서울 마포구의 약국 안 서점 ‘아직 독립 못한 책방’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책과 약이 한 공간에 진열된 모습이 이색적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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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에는 오메가3 등 각종 의약품 광고물과 약국 운영시간을 알리는 게시물이 걸렸다. 그런데 약 광고 주변으로 에세이, 소설 등 신간 소개가 줄줄이 붙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오른쪽에는 약이, 왼쪽에는 책이 가득하다. 이 수상한 공간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약국이자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이라는 이름의 서점. 최근 이곳에서 만난 박훌륭 약사(40)는 “하루에도 여러 명이 ‘여기가 약국 맞냐?’고 묻는다”며 웃었다.
그가 ‘약국 안 서점’을 연 건 2018년 8월.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사서 모으는 걸 즐기던 그는 좋아하는 일을 아예 자신의 일터에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서점을 열었다. 그는 “약국을 하면서 ‘처방전 없이 살짝 약을 달라’는 등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는 분들이 많아 스트레스가 컸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일이 적성에 안 맞다는 생각도 했다”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약국 일도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어 서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잘 팔리지 않는 약국 판매용 화장품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책 100여 권을 진열했다. 서점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규모. 그러나 작디작은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이 점점 늘었다. 그는 “처음 책을 팔았을 때 ‘여기도 손님이 오네’ 싶어 얼떨떨하면서도 이게 작은 동네 책방만의 매력이구나 싶어 신났다”며 “나와 책 취향이 비슷한 이들과 친해지면서 사람 만나는 재미를 다시 느끼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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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이나 모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서점은 어느새 약 1500권 규모로 발전했다. 약품 진열대는 조금씩 서가에 자리를 앙보하는 중이다. 그는 “약국 안 서점이 우리 서점만의 정체성인 만큼 서점을 따로 낼 계획은 없다”며 “본업인 약사 일에 충실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며 ‘아사장(아직 독립 못한 책방 사장)’으로 불리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저도 구체적인 생각을 안 하고 일단 서점을 시작했거든요. 책 몇 권 꽂아 놓는 걸로요.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면 좋겠어요. 고민하느라 시작조차 못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일단 시작하고 보면 어떤 식으로든 방향은 생길 겁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