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괴물도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인간이 협잡과 음모를 일삼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권력 지향적이라는 뜻도 아니다. 인간은 정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끔 되어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고대 지중해 지역 그릇에 그려진 그리스 신화의 괴물 ‘키메라’. 기원전 350∼340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알브레히트 뒤러가 요한계시록에 등장한 괴물을 묘사한 1511년 목판화 작품. 사진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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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종종 하나의 몸에 비유되어 왔건만, 이 국가는 왜 이토록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단일민족국가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은연중 하나의 국가에는 하나의 민족이 있어야 하고, 하나의 민족에는 하나의 정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던 와중에 하나의 몸에, 여러 개의 머리, 그보다 더 많은 왕관을 쓴 존재를 보면 당혹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괴상해 보이는 국가는 다름 아닌 제국이다. 제국은 커다란 덩치와 다양한 민족 구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학자들은 유별난 다민족 제국에 대해 괴물의 비유를 사용하곤 했다. 한반도, 중국, 소비에트 연방 등 여러 경계에 걸쳐 있는 다민족을 통치한답시고 일본 관동국은 1931년에 만주국이라는 괴뢰 국가를 세웠다. 실질적으로 일본 제국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이 만주국의 황제로 내세웠다.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부자연스러운 나라를 탐구한 책에 “키메라―만주국의 초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관동군에 의해 느닷없이 끌려와 만주국 황제의 지위에 올라야 했던 푸이는 원래 청나라의 황제였다. 역사학자 구범진은 복잡한 민족 구성을 가진 청나라를 다룬 저서에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7세기에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청나라는 한족 중심의 명나라에 비해 그 국가 성격이 사뭇 달랐다. 일단 영토가 명나라의 두 배나 되었고, 확대된 영토에 걸맞게 티베트, 위구르 무슬림, 버마, 몽골, 타이 사람들을 신민으로 포괄했다. 그러니 하나의 몸에 여러 유전 형질이 공존한다는 키메라에 청나라를 비유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몸집을 불린 제국이 대외적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괴물 같은 존재를 다스리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딴살림을 차리고 살던 이들을 한 지붕 아래 모이게 했을 때 생겨날 갈등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청나라는 민족들 간 조화를 꾀하고, 제국으로부터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소수민족 문제의 뿌리는 청나라의 제국적 성격에 그 원인(遠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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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국가 통치의 어려움을 표현한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판데르 보르흐트의 1578년 에칭 작품. 사진 출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길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례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덜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란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 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