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79kg급 동메달리스트 주정훈. 지바=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주정훈(27·SK에코플랜트)은 4일 오전 일본 도쿄 미나토구(港區) 베이사이드 호텔 아주르 다케시바(竹芝) 내 ‘코리아 하우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패럴림픽공동취재단과 인터뷰하는 주정훈. 도쿄=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메달 확정 후 경기장에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던 주정훈은 “경기 시작 전부터 ‘아, 오늘 하루가 내 태권도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메달을 따고 났더니 부담감과 압박감을 털어냈다는 생각이 들어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고 말했다.
동메달을 딴 뒤 오열하고 있는 주정훈. 지바=패럴림픽공동취재단
가장 하얗지만 그래서 가장 쉽게 더러워지는 도복처럼 태권도는 주정훈에게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원래 비장애인 전국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르며 기대를 모으던 주정훈은 사춘기 시절 경기장 곳곳에서 들리는 수근거림에 상처를 받아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접었다.
태권도가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주정훈은 태권도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2017년 12월 장애인 선수로 변신한 그는 올해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아시아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면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하루에 두 번 맞대결을 벌인 이살디비로프를 안아주고 있는 주정훈(오른쪽). 지바=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사실 첫 번째 경기 도중 다리 등을 많이 다쳤다. 그래도 다리가 부러져도 발차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한국 장애인 태권도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한국 태권도가 외국에서 무시당하지 않게끔 정신력으로 버텨내려 했다”고 덧붙였다.
주정훈의 인터넷 메신저 자기소개 문구.
주정훈은 “솔직히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남들과 틀리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 장애인선수촌에 들어가고 나서 장애는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 “나는 뒤늦게 알았지만 장애가 있는 유년기, 청소년기 여러분들도 ‘내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밖으로 나와야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이 도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0 도쿄 패럴림픽 경기에서 발차기 공격을 선보이고 있는 주정훈. 지바=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아직 장애인 태권도 실업팀은 비장애인 팀처럼 합숙 훈련을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정식 실업팀이 생기면 기량 발전에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원을 부탁했다.
계속해 “패럴림픽보다 먼저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장애인아시아경기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메달이 동료들에게 더욱 절실함을 느끼게 해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장애가 있다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깰 수 있도록 더욱 많이 노력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2020 도쿄 패럴림픽 시상대에서 두 팔을 높게 쳐든 주정훈. 지바=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편견 가득한 세상을 향해 오른쪽 로켓 주먹을 발사한 ‘태권V’는 어느새 주전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해맑게 웃는 철이가 되어 있었다.
도쿄=황규인기자 kini@donga.com·패럴림픽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