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학법 시행땐 한국에 사학은 없다”… 野, 자체 개정안 내기로

입력 | 2021-08-31 03:00:00

[여당 입법 폭주]사립학교들 거세지는 사학법 반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윤 원내대표 왼쪽)가 30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사학법 개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여야가 30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면서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안 처리도 미뤄졌다. 이날 사학들은 하루 종일 국회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 처리를 강행할 경우에 대비해 헌법소원 등 대응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사학들은 “사학법이 통과되면 학생 모집권, 교육과정 편성권, 수업료 징수권에 이어 인사권까지 정부에 빼앗기는 것”이라며 “이제 한국에 사실상 사학은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가 열리면 자체적으로 수정한 사학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여당이 추진 중인 사학법 개정안의 주요 조항을 뒤집는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 교사 채용 시 필기시험 강제 위탁

사학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학이 신규 교사를 임용할 때 공개전형 중 필기시험을 시도교육감에게 의무적으로 위탁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학법 시행령에 ‘공개전형을 교육감에게 위탁해 실시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위탁 여부는 각 사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문제를 출제하고 비용을 부담할 여력이 안 되는 일부 법인만 필기시험을 교육청에 위탁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원을 신규 채용한 사학의 63.2%가 필기시험을 교육청에 위탁했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모든 사학이 필기시험을 의무적으로 교육청에 위탁해야 한다. 사립학교 신규 교사는 지원하는 법인에서 출제하는 필기시험을 보지 않고, 지역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 공립교사 임용시험과 동일한 날, 같은 과목(교육학과 전공)으로 시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개별 사학의 건학이념과 인재상에 맞는 교사를 뽑기 위해 학교별로 특성을 반영해 출제한 필기시험을 치르는 게 불가능해진다.

○ 법 시행되면 정규 교사 채용 위축 우려

해당 조항의 시행 시기는 공포 후 6개월부터다. 대부분 사학에서 올해 11월 이후 시행하는 2022학년도 신규 교사 필기시험은 그 전에 선발 공고를 내기 때문에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당장 올해부터 신규 채용 규모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도다.

경기 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사립초중고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기 지역 사학 법인은 내년도 신규 교사 채용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경기도교육청이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전인 지난달에 사학들에 ‘필기시험뿐 아니라 채용 전 과정을 교육청에 위탁하지 않으면 해당 교사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8개 법인만 참여를 신청했다.

백승현 경기 사립초중고협회장은 “참여 법인은 관선 이사가 파견된 곳으로 추정된다”며 “경기 지역 초중고교 법인이 128개인데 대부분은 내년도 채용을 안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위탁 채용을 경험한 사학들이 “교육청 채용을 거친 교사들이 ‘나는 교육청에서 뽑아서 왔고, 뒷문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편 가르기를 해 학교 분위기를 흐린다”고 일관되게 언급하는 것도 다른 사학들이 위탁 채용을 주저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내년부터 정규 교사 채용 규모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 사학들 “차라리 채용시험 공동 출제”

일부 사학은 공동으로 필기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사학의 인사권과 자율성을 지키면서 공정성과 채용 비리에 대한 우려를 차단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대다수 교육청은 출제위원 및 감독요원 추천 등 채용 과정의 일부만이라도 교육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부터 관내 사학들이 필기시험을 공동 출제하는 경북도교육청 관계자조차 “시행령에 ‘법인 공동의 출제’가 명시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방법은 허용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경우 사학들은 인사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규 교사 대신 사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를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