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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허물어지듯” 美아파트 붕괴 159명 실종

입력 | 2021-06-26 03:00:00

플로리다 참사… 최소 4명 사망
바이든, 비상사태 선포-수색 총력



극적 구조 24일(현지 시간)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에 있는 12층짜리 아파트 붕괴 사고로 건물 잔해 속에 갇혔던 10대 소년이 소방대원에게 구조되고 있다. 현지 매체 7뉴스마이애미는 이 소년의 이름이 조나 핸들러이고, 골절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사고가 난 아파트 ‘섐플레인타워 사우스’는 1981년 지어진 건물로 전체 136가구 중 55가구가 무너져 내려 건물 한쪽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아래쪽 사진). 서프사이드=AP 뉴시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에 있는 12층짜리 아파트 일부가 24일(현지 시간) 새벽 무너져 25일 오전 10시 현재 4명이 사망하고 159명이 실종됐다. 건물이 붕괴됐다는 첫 신고가 접수된 때가 24일 오전 1시 23분으로, 입주민 대부분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어서 사상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고가 난 아파트 ‘섐플레인타워 사우스’는 1981년 지어진 건물로 전체 136가구 중 55가구가 무너져 내렸다. 사고 장면을 목격한 이 지역 한 주민은 “케이크가 허물어지듯이 건물이 무너졌다”고 했다. 아파트 붕괴 후 현지 구조당국은 마이애미 일대 80개 수색팀을 투입해 밤새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생존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마이애미헤럴드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美아파트 한밤 10초만에 폭삭… 잔해속 소년 “날 두고 가지마세요”

12층 아파트 붕괴 참사



쪼개지듯 잘려나간 건물 24일(현지 시간)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에 있는 12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섐플레인타워 사우스’ 일부가 붕괴됐다. 건물 한쪽이 쪼개지듯 잘려 나가면서 폭격을 맞은 듯 철골 등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프사이드=AP 뉴시스

아파트 붕괴 순간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불과 10초가량 사이에 건물이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주저앉는다. 마치 공사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 폭약으로 건물을 폭파하는 듯한 모습이다. “지진이 난 것 같았다”, “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 “9·11테러가 떠올랐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지은 지 40년 된 건물이어서 구조물 노후화가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온난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이 지반 침하로 이어지면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붕괴 아파트는 마이애미 해변에서 직선거리로 10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플로리다국제대 지구환경대학의 시몬 브도빈스키 교수가 지난해 4월 발표한 논문에는 이 아파트가 1993∼1999년 해마다 2mm씩 가라앉았다는 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미국 언론은 이런 내용을 전하면서 해수면 상승으로 해변가 빌딩들이 붕괴 위험에 노출돼 왔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어머니가 실종됐다는 파블로 로드리게스 씨는 “사고 나기 하루 전날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며 전화를 했었다”고 CNN에 말했다. 이 아파트는 올해 당국의 안전성 검사를 거쳐 재허가 절차를 밟아야 했고, 이를 위한 건물 지붕 수리 작업이 한 달째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 작업이 이번 사고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40년 된 건물에서 물이 새는 현상이 만성적으로 지속돼 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엔 벽에 금이 가고 손상됐다는 이유로 건물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컨설팅 엔지니어인 존 피스토리노 씨는 “이번 같은 붕괴는 너무나 극적이고 이례적”이라며 “전시에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사례와도 비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CNN과 마이애미헤럴드 등 지역 언론에 따르면 현재까지 35명이 잔해 속에서 구조됐다. 10명은 부상당해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았고 2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10대 소년 조나 핸들러가 잔해 사이로 손을 뻗어 흔들며 “도와 달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주민이 구조를 돕기도 했다. 현지 매체 7뉴스마이애미는 핸들러가 잔해 속에서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Don‘t leave me)”라고 거듭 소리쳤다고 전했다. 잔해에 다리가 짓눌린 상태로 발견된 핸들러의 어머니는 구조 과정에서 몸을 빼내기 위해 다리를 잘라야 했다. 잔해에 갇힌 생존자들이 휴대전화 플래시로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현지 비상사태 운영센터에 따르면 실종자를 찾아 달라는 요청이 전화나 홈페이지를 통해 700건 넘게 몰렸다.

제발 살아 있기를…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24일(현지 시간) 한 여성이 실종자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오열하고 있다. 서프사이드=AP 뉴시스

현장을 빠져나온 주민들은 붕괴 당시 상황이 폭탄이나 미사일을 맞은 것 같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건물 6층에 살았던 알프레도 로페스 씨는 침대를 흔드는 진동과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뒤 가족과 함께 급히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먼지구름 때문에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도와 달라고 외치는 소리는 들었다”고 말했다. 수색 작업에 나선 구조대원들은 음파탐지기와 수색견, 수색 카메라 등을 동원해 밤새 한 명의 매몰자라도 더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프레드 라미레스 경찰서장은 “대규모 수색과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고, 잔해에 갇힌 이들을 확인하고 구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붕괴된 아파트가 팬케이크처럼 눌려 수색을 하거나 외부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 구조대가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너진 아파트에는 늘 거주하는 입주민 외에도 휴양지인 마이애미를 찾은 다른 지역의 여행객과 외국인도 상당수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유대인들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 중 상당수는 남미 출신으로 최소 27명이 콜롬비아, 쿠바, 칠레,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온 것으로 파악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고 미국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WP에 따르면 실종자 중에는 파라과이 대통령 부인의 여동생 부부와 세 자녀도 포함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부부가 임대한 아파트가 붕괴한 건물 인근에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5일 플로리다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실종자 수색 및 구조 등 사고 대응을 위한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