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이 1997년 5월 26일자에 3개면에 걸쳐 ‘대남공작 영웅1호 성시백’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해방 정국에 신사복에 중절모 차림으로 명동 일대를 휘젓고 다녀 ‘명동백작’으로 불린 성시백은 공작자금으로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 등 10여 개 신문을 만들어 선전활동을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전에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이용한다. 레닌도 그랬다. 그러나 혁명에 성공하자 돌변해서 언론의 자유를 짓밟았다.
▷중국 ‘런민(人民)일보’도 관영이다. 이때 관영은 정부에 속한다는 의미의 관영이 아니라 당에 속한다는 의미의 관영이다. 공산 국가에서 정부와 구별된 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선전이다. 런민일보와 그 계열인 ‘환추(環球)시보’ 등의 기자는 다 공산당원이다. 지방 신문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원이 아니면 기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통치자를 비판하는 언론(press)이란 개념은 없고 통치자를 선전하는 매체(media)란 개념만 있다.
▷핑궈일보의 일일 발행 부수는 통상 7만 부였다. 그러나 홍콩 당국이 12일 사주를 연행하고 신문사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이후 구독 수요가 치솟아 55만 부까지 팔렸다. 24일 폐간호는 100만 부가 발행됐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가판대에서 마지막 신문을 샀다. 가늘게 오는 빗속에서 누구는 비를 맞으며, 누구는 우산을 쓰고 한 부의 신문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모습이 마치 소리 없는 자유의 아우성처럼 들려 가슴이 먹먹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