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명분 규제에 발목 잡힌 신사업 K유니콘은 제자리 지키기도 버겁다
홍수용 산업2부장
“기업과 기업은 원래 갑을 관계다. ‘파트너십’이라고 해도 돈 주는 쪽과 받는 쪽이 있는 한 완전히 동등한 협력은 없다. 파트너 관계를 끝내야 할 때가 되면 공정 논란이 생기고 정부 규제가 작동한다. 파트너십을 늘리지 말고 가까운 회사와만 거래하고 싶다.”
기업 간 서열이 있다고 보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비판하는 옛날식 사고에 빠진 기업인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요즘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네카라쿠배당토직(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직방의 앞 글자를 합친 말)’ 중 한 곳의 최고경영자(CEO)가 들려준 말이다. 그는 “규제 때문에 스타트업계가 우울증에 걸릴 정도”라고 했다.
현 정부가 규제개혁을 마냥 외면한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서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약속했다. 지난달 김부겸 국무총리도 “진정한 규제혁신은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게 변화해 나가는 것”이라는 멋진 말을 했다. 현 정부가 말로 보여준 개혁 의지만큼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뽑기 못지않았다. 기업들이 개혁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상에 절망하는, ‘희망 고문’과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반복되는 게 문제다. 이런 악순환에는 재계 단체의 뻔한 건의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매뉴얼을 만들어두고 건의사항을 내라고 하면 서랍에서 해묵은 규제개혁 리스트를 꺼내 줄줄 읊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정도다.
속도 미스매치는 더 근본적인 문제다. 스타트업계는 빨리 출발한 뒤 가속도를 붙이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신구(新舊)의 갈등이 생긴다. ‘타다 사태’를 보면서 스타트업들은 ‘한국은 빠르게 뛰면 정부와 기득권에 혼나는 사회’라는 생각을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라는 고릿적 법을 ‘땜질’했다. 더 많은 ‘타다’가 나오게 할 혁신법이라고 했지만 카카오 가맹택시만 늘었고 밤에 택시가 안 잡히는 건 여전하다. 신사업을 하면 기득권의 파이는 줄어든다. 일자리 시장에서 퇴출되는 사람을 배려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고민을 하라고 관련 기관을 둔 것이다. 스타트업에 속도를 늦추라는 걸 해법이라고 내놓는다면 4차 산업혁명위원회, 부처별 규제개혁위원회는 도대체 왜 만든 건가.
A의 목표는 실망스럽게도 해외 동종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규제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한국에 상륙하면 규제에 발목이 잡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2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국 유니콘 기업의 성장 잠재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쾌거”라고 했다. 정작 ‘K유니콘’들은 국내 시장을 수성하는 것조차 버겁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