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선종]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28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을 찾은 한 신자가 기도하고 있다. 정 추기경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5월 1일 오전 10시 장례미사가 열린다. 사진공동취재단
허영엽 신부 천주교서울대교구 대변인·회고록 ‘추기경 정진석’ 저자
공학도이던 정 추기경님이 사제의 길을 결심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정 추기경은 외동아들인 자신만을 보고 홀로 살아온 어머니에게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랜 고민 끝에 사제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이 어미는 걱정하지 말고 네 뜻대로 하렴!”
아들이 사제가 되고 훗날 주교가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말년까지 인천 부평에서 삯바느질을 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사제의 삶에 사사로운 가족 일은 방해가 될 수 있다며 단 한 번도 아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는 마음은 모자가 꼭 닮았습니다.
정 추기경 어머니의 세례명은 루치아입니다. 루치아 성녀는 로마시대 두 눈을 잃고 순교해 눈이 아픈 사람들의 수호성인입니다. 정 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어머니의 안구 적출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낌없이 주고 떠나는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두 눈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빛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아들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됐다고 합니다. 정 추기경도 그 모범에 따라 2006년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했습니다.
2006년 추기경 서임이 발표된 직후, 한 기자가 불쑥 질문했습니다. “만약 어머니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정 추기경님의 답은 이랬습니다. “엄마를 만난다면, 절을 하고 싶어요. 끝없이, 아주 많이.”
정 추기경님! “어머님을 만나 절을 많이 하셨나요?”
그동안 우리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