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고사 위기 ‘크리스마스트리’ 살리자”

입력 | 2021-04-16 03:00:00

구상나무 복원시험 현장 가보니




연구원들이 복원 시험지에 설치된 장비에 기록된 습도와 온도, 바람 세기 등과 같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 거창=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9개 집단 서식지가 있는데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을 제외한 나머지 6곳은 1ha(헥타르·축구장 1.5배 넓이)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마저도 최근 수년 새 기후변화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이달 8일 경남 거창군 금원산 정상(해발 1353m)을 향해 나 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 안에서 구상나무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구상나무는 신생대 3기 마이오세(2300만 년∼510만 년 전)부터 해발 1000m 이상 한반도 고지대에 살아온 고유종이다. 해외로 수출돼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알려지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차 터전을 잃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13년 구상나무를 기후변화로 자생지 분포 면적이 급속히 줄어든 위기종으로 분류했다. 산림과학원과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는 2019년 구상나무 보존을 위해 키 20∼30cm의 어린 구상나무 1350그루를 심고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세계인의 사랑 받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위기


연구팀을 태운 차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뚫고 한참을 달려 해발 1000m 부근에 이르렀다. 이곳부터 다시 1시간을 더 가야 구상나무 복원 시험지가 있다. 임 연구사와 채승범, 서한나 연구사는 복원사업이 시작된 2019년부터 분기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시험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이 편안해지는 구상나무의 초록색이 흙 색깔과 대비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연구팀은 어린 구상나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복원 시험지의 습도와 온도, 바람 세기 등 환경을 점검했다.

소나뭇과에 속하는 구상나무는 5, 6월 잎 끝에 솔방울 같은 꽃이 피는데, 노란색과 분홍색, 자주색 등 여러 아름다운 색깔을 낸다. 모양이 아름다워 정원 문화가 잘 발달한 유럽이나 북미 등지에서는 개량을 거쳐 관상수와 공원수로 쓰인다.

산림과학원이 금원산에 심은 어린 구상나무들은 유전자 분석을 거친 좀 특별한 묘목들이다. 임 연구사는 “구상나무 같은 고산지역 침엽수종은 다른 나무와 달리 생장이 느리고 관리가 어려워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지리산과 한라산, 금원산 지역의 구상나무 종자 중 높은 온도에 적응하고 생장이 빠른 유전자를 가진 종자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더위에 강한 구상나무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해 국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300그루의 유전자(DNA)를 분석해 이를 자료화하고 금원산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를 찾아냈다. 한때 구상나무의 낙원으로 불렸던 금원산은 2018년 인공위성 관측과 현장 조사 결과 구상나무의 서식 면적이 0.6ha까지 줄고 20그루도 채 남지 않았다.


○급격한 서식지 쇠퇴 우려


양묘장에서 기른 지 2년이 넘은 구상나무들. 거창=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최근 기후변화로 고지대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구상나무가 뿌리박고 있는 땅은 급격히 메마르고 있다. 겨울철 기온이 올라가면서 적설량이 줄어 봄에 공급되는 수분량도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구상나무가 하얗게 말라 죽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병해충의 공격도 늘고 있다.

2019년 제주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분포 면적은 2006년 738ha에서 2015년 626ha로 줄었다. 같은 해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리산 반야봉 일대 1km²에 서식하던 구상나무 1만5000여 그루 중 47%인 6700여 그루가 말라 죽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원산과 전남 백운산, 경북 가야산 등 구상나무 소규모 군락지의 경우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임 연구사는 “소규모 군락지들은 구상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그만큼 외부 환경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진다”며 “이에 따라 대규모 군락지보다 서식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구상나무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여러 군락지 중에서도 금원산이 이런 경향이 짙었다. 연구팀이 금원산을 유전자 분석을 통한 복원 시험지로 택한 이유다.


○기후변화 적응한 유전자 찾아 멸종위기 극복


기후변화에 잘 적응한 구상나무를 옮겨 심은 결과는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3년차 분석 결과 어린 구상나무 생존율이 99%로 나타났다. 어린 구상나무들을 처음 심었을 때 평균 16cm 정도였는데 1년에 8cm씩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적응한 유전자를 찾아낸 것 외에도 양묘장에서 묘목을 키운 것도 복원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상나무는 발아율이 50% 미만으로 양묘가 쉽지 않다. 김대헌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 생태수목원담당은 “구상나무 양묘 노하우를 개발해 매달 200∼300그루씩 길러내고 있다”며 “국립수목원의 지원을 받아 현재 양묘장에서 2500그루 정도 구상나무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구상나무 복원 사업은 2022년까지 진행한다.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에서 기르고 있는 2500그루 중 1600그루는 전북 무주군 덕유산 지역에서, 900그루는 지리산에서 복원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임 연구사는 “이번 구상나무 서식지 복원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구상나무의 유전 다양성 복원 기술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거창=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