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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은마 40년 거주 은퇴자 “보유세 폭탄에 집 팔아야 할 판”

입력 | 2021-03-17 03:00:00

[공시가 급등 후폭풍]집주인들, 공시가 급등에 불만 폭발




14년 전 은퇴한 이모 씨(76)는 16일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서 자신이 사는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공시가격을 확인하고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지난해 13억7000만 원에서 올해 15억3000만 원으로 올랐다. 고령자 및 장기보유 세액공제 헤택을 모두 받은 이 씨는 지난해 보유세로 430만 원을 납부했지만 올해는 550만 원 이상 내게 됐다. 1주택자인 이 씨에게 남은 재산은 40년 전 장만한 이 아파트가 유일하다. 은퇴 후 생활비는 연금으로 충당했다. 그는 “평생 살던 집 한 채를 팔거나 자녀들에게 손을 벌려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 “종부세 내려 주식 해야 할 판”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지난해 13억7000만 원에서 올해 15억3000만 원으로 올랐다. 2021.3.3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확인한 집주인들의 불만이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권 고가주택 보유자나 다주택자들이 주로 불만을 제기했던 과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올해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9% 넘게 오르면서 서울 강북과 지방에서도 종부세 부과 대상인 9억 원 초과 주택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모 씨(38)는 3년 전 전세를 끼고 서울 성동구 서울숲리버뷰자이(59m²)를 산 뒤 올해 처음 종부세를 내야 한다. 공시가격이 지난해만 해도 8억4000만 원이었지만 올해는 종부세 부과 기준(9억 원) 초과인 9억8300만 원으로 올랐다. 그는 “외벌이라 지금 월급도 빠듯한데 종부세까지 내려면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에서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주택은 지난해 28만 채에서 41만 채로 증가했다. 서울 아파트 6채 중 1채꼴로 종부세를 내야 하는 셈이다. 9억 원 초과 주택은 서울 25개 구 중 도봉구와 금천구를 제외한 23곳에서 나와 사실상 서울 전역이 종부세 사정권에 들었다.

지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부산 남구 더블유(W)아파트(122m²)에 사는 A 씨는 올해 보유세가 작년보다 400만 원가량 늘어난다. 지난해 7억1000만 원이던 공시가격이 올해 13억2000만 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재산세로만 110만 원을 냈는데 올해 처음 종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면서 예상 보유세만 500만 원이 넘는다. 그는 “집으로 시세 차익을 거둔 것도 아니고 혼자 돈을 버는 입장이라 황당하다”며 “세금 내려면 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대전 서구에 사는 정모 씨(63)는 “집값이 오른 게 내 잘못인가, 오히려 정부가 올린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 공시가격 산정 기준에 의문 제기

당장 종부세를 피한 집주인들도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모 씨(64)가 사는 서울 성북구 정릉대주피오레(84m²)의 공시가격은 올해 3억6700만 원으로 종부세 과세 대상은 아니다. 공시가격이 6억 원 이하여서 앞으로 3년 동안 재산세 감면 혜택도 받는다. 하지만 이 씨는 “3년 뒤면 재산세를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하다 보니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데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했다. 1주택자들은 집을 팔고 이사하려고 해도 전국적으로 집값이 올라 결국 집 크기를 줄이거나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공시가격 산정 기준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에 사는 황모 씨(62)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3년간 14% 올랐다고 말해 온 정부가 공시가격을 1년 만에 19% 넘게 올리는 이유는 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실제 1년 전보다 실거래가격이 떨어졌는데 공시가격은 오른 사례도 확인됐다. 서울 성북구 A아파트는 전용 84m² 실거래가가 2019년 4억9500만 원에서 지난해 4억9100만 원으로 하락했지만 공시가격은 20% 이상 올랐다.

서울 마포구 래미안공덕3차 소유주인 김모 씨(39)는 “시세에 맞춰 공시가격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종부세 부과 기준인 고가주택 기준도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고가주택 기준인 9억 원은 2008년 이후 13년째 그대로다.

지난해 전세난을 겪은 무주택 세입자들은 올해 공시가격 인상이 임차료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강모 씨(35)는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난 뒤 집주인이 늘어난 세 부담만큼 보증금을 올리거나 반전세로 돌릴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공시가격은 분양가에 반영되는 구조인 만큼 향후 신축 아파트 분양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금은 국민을 벌주기 위한 수단이 아닌데도 정부가 징벌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주택시장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라면 보유세를 높일 때 양도소득세를 낮추는 식으로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 / 대전=이기진 / 부산=강성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