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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Special Report:]“어떤 고객을 도울 것인가” 브랜드의 목적 세워라

입력 | 2021-02-24 03:00:00

'다윗' 스타트업이 골리앗 넘으려면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 남들과 다른 브랜드의 이름, 로고, 컬러, 아이콘 등 ‘보이는 영역’에만 신경 써서는 차별화에 성공할 수 없다. 경쟁이 심화되고 포화 상태에 이른 마케팅 환경에서 브랜드의 궁극적인 차별화는 가시적인 영역이 아닌, 브랜드 철학과 사고방식 같은 무형의 영역에서 이뤄질 수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는 수많은 네온사인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광한다. 하지만 기업 마케팅에 주체적으로 대처하는 오늘날 고객들에게 이것들은 모두 획일화된 경험일 뿐이다. 더 이상 수동적이지만은 않은 소비자를 상대로 시각적, 형태적인 영역에서 돋보이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은 마케팅 자원이 풍부한 대형 브랜드에는 위기이지만, 스타트업들에는 절호의 기회다. 무형의 경쟁에서는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진지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선에 선 젊은 브랜드들이 더 유리할 수 있다.

○ 브랜드의 목적과 관점을 정립해야

그렇다면 지금 막 걸음마를 뗀 ‘다윗’ 스타트업들이 ‘골리앗’ 기성 브랜드를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단계는 브랜드 목적과 관점을 정립하는 일이다. 먼저, 브랜드의 목적은 ‘누구를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질문은 고객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서 고객의 삶에서 결핍된 문제를 발견하고, 이 문제에 깊게 공감하게 만든다. 브랜드의 목적을 명확히 세워야 브랜드가 고객을 위해 도전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가 뚜렷해진다. 목적 중심의 브랜드만이 고객의 삶에 의미 있는 브랜드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으로, 브랜드의 관점은 목적을 정립한 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만나는 고객, 시장,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이다. 브랜드의 목적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라면, 브랜드의 관점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해당 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견해의 시작점이다. 브랜드의 관점은 새로운 고객 가치를 발견하고 그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브랜드의 목적과 관점을 바로 세운 브랜드는 과감하게 행동하고, 진정하게 도전하며,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를 만들고, 고객 가치를 확장할 수 있다. 가령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인 C2C(Consumer to Consumer) 시장을 만든 커머스 플랫폼 ‘프롬마켓’이나 아프리카의 에너지 및 교육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고객 가치를 확장한 태양광에너지 스타트업 ‘요크’ 등은 브랜드의 관점과 목적을 깊게 파고든 기업들이다.

○ 뿌리가 단단한 브랜드가 되려면

무엇보다 기존 시장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를 창출하려는 스타트업은 진입하려는 시장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스웨덴 자동차 회사 볼보의 전기자동차 브랜드인 ‘폴스타(Polestar)’가 대표적인 예다. 폴스타는 테슬라가 뚜렷한 카리스마로 선점한 전기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를 위해 ‘오랜 전통을 가진 안전한 자동차’라는 모기업 볼보의 브랜드 유산과 철저한 단절을 택했다. 그리고 마치 독립된 스타트업처럼 과감한 행동을 보여주며 전기자동차 산업의 리더인 테슬라를 위협했다. 실제로 폴스타가 차량 내부에 식물 기반 인테리어를 적용하자, 수개월 뒤 테슬러가 같은 콘셉트를 한발 늦게 따라하기도 했다.

과감하게 행동할 뿐만 아니라 진정성 있는 도전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미국의 혁신적인 리사이클링 회사 ‘테라사이클’은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을 통한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을 목표로 새로운 브랜드 ‘루프(LOOP)’를 출범시켰다. 그동안 많은 친환경 기업과 단체는 재사용이 환경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재사용에 수반되는 비용과 불편함 때문에 재활용 사업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루프는 환경 보호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진정성 있는 도전에 나섰다.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닌 영구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를 채택한 제품만 취급했다. 여러 장애물을 뛰어넘고 치약, 주방세제, 피넛버터 등을 생산하는 25개 기업과 협약을 맺고 5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같은 테라사이클의 행보는 의식 있는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편리한 재사용’을 위해 진정성 있는 해법을 내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처럼 뜨겁고 강력한 브랜드의 목적과 냉철하고 차가운 브랜드 관점의 단단한 결합은 브랜드를 굳게 세우는 뿌리가 된다. 브랜드 목적이 기업의 가슴에서 나온다면 브랜드 관점은 머리에서 나온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뿌리를 단단하게 구축한 브랜드만이 보이는 영역에서 차별화라는 본질적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무기는 누구나 사용하는 칼이 아닌, 자신만의 무기인 물맷돌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남호 나인후르츠 대표 nhkim@9fruits.com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