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의 나라 집단지성과 투명성 담보되는 권력구조 절실하다
정용관 논설위원
사실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 지형은 여권 핵심부가 개헌 가능성을 타진할 만한 여건으로 가고 있다. 여야, 현재와 미래 권력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그렇다는 얘기다.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여권 경선구도는 요동칠 것이다. 현재 권력이 믿을 수 있는 미래 권력 창출이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퇴임 후 안전’이 최우선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현직 대통령이 내심 개헌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뚜렷한 대권주자가 안 보이는 야권 상황도 개헌의 또 다른 여건이다. 어쩌면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범야권이 패배할 경우 개헌 동력이 더 살아날지도 모른다.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책임총리제든 내각제든 개헌을 하자는 의원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범여권 180석에 야당 일부가 동참하면 재적 3분의 2인 200석 확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현재 지지율 1위의 이재명 경기도지사 지지층과 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기형적 5년 단임제를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이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남는다. 이 지점이 딜레마다. 대통령제를 발명한 미국은 지난 대선에서 보듯 헌정 위기를 맞다가도 ‘사법부 우위’와 ‘입법부 견제’ 시스템으로 자정 기능을 발휘해 왔다. 0.1%라도 더 얻으면 사실상 현대판 ‘임기제 군주’ 노릇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채 폭발적인 진영 에너지의 힘으로 당선됐다가 퇴임할 무렵 정치적 단두대에 올라가는 일이 반복된다. 이번에 선출될 대통령이라고 다를 리 없다.
이젠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의 나라’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철인(哲人) 대통령은 없다. 내각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집단지성이 작동하고 이를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3류, 4류 정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다.
내년 대선과 2024년 총선을 새로운 권력구조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부터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와 장관이 내각을 책임지고, 국민 평가를 받는 방향의 개헌을 고민해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같은 지도자가 우리나라라고 없을 리 없다. 헌정사를 보면 역대 개헌은 유력 정파 간 막후 담합의 산물이었다. 청와대는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추진하고, 국회는 여야 동수의 투명한 주체를 세워 모든 협상 과정을 공개하며 개헌을 추진한다면 국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