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공 ‘고운당필기’ 첫 한글번역 “고주몽 신화서 국명 유래 찾아… 개구리를 한자로 옮기며 변형”
조선후기 실학자로 ‘발해고’를 남긴 유득공(1748∼1807)은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사진)’에서 “고구려는 우리말로 개구리다. 고주몽이 금와(金蛙·금개구리)의 아들이므로 국호를 고구려라고 한 것이다”라는 이덕무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개구리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고구려가 됐다는 것. 유득공은 신라 국명의 연원도 ‘새 나라’라는 우리말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삼국시대) 당시 군호와 관명은 모두 우리말을 썼는데 어찌 한자어의 의미를 따라 나라 이름으로 삼았겠는가”라고 썼다. 한자화되기 이전 한반도 문화의 원형을 찾고 자한 실학자로서의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고운당필기의 첫 한글 번역서를 최근 출간했다. 유득공이 약 20년 동안 집필한 이 책은 그의 일기이자 백과사전이랄 수 있다. 총 295편의 짧은 글들로 구성된 문집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거쳐 일본, 미국으로 분리 반출된 탓에 우리말 번역이 늦어졌다. 번역서 저자인 김윤조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국내에 남아 있는 고운당필기에서 유실된 일부 내용을 일본 덴리대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찾아냈다. 이에 따라 확인되지 않은 41편을 제외한 254편의 글을 모아 이번에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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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북쪽 풍속이 예로부터 이러한데 큰 죄가 되는 줄 진작 알았다면 어찌 이렇게 했겠느냐”고 읍소했다. 유득공은 이 같은 함경도 장례 풍속이 부여, 옥저에서 연유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후한서 동옥저전에 ‘장사를 지낼 때 큰 나무 관을 만들고 죽은 자를 우선 임시로 매장해 피부와 살이 다 없어진 뒤에야 유골을 수습해 관속에 넣는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