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윤한덕 센터장 2주기 맞아 집무실 유품 20여점 추모위서 공개 쪽잠 자던 간이침대-낡은 휴대전화… 응급의료체계 개선 고민 흔적 담겨 ‘윤한덕상’ 첫 수상자는 정은경 청장
지난달 28일 광주 전남대 의대 박물관에서 허탁 응급의학과 교수가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유품을 소개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019년 2월 4일 설 연휴에 병원을 지키다가 과로로 숨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당시 51세·사진)이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남긴 메모의 일부다. 여러 회의 내용이 뒤섞이고 일부는 지워져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윤 센터장의 고민은 하나로 모아졌다. 응급의료 체계를 개선해 피할 수 있는 죽음, 억울한 죽음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기록은 광주 전남대 의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집무실에 있던 유품 20여 점을 윤 센터장의 친구인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허탁 교수(58)가 가져왔다. 지난해 1주기에 맞춰 추모 행사를 열고 유품도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됐다. 윤 센터장 추모실무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유품을 본보에 처음 공개했다.
윤 센터장은 감염병이 확산됐을 때 응급의료 체계를 보호하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때 국립중앙의료원 메르스대책반장을 맡아 이틀 만에 음압병실을 만들기도 했다.
붉은 매직으로 쓴 ‘감염위원회’는 그때부터 이어진 고민의 흔적이다. 응급실에 음압 격리실을 만들고, 병상 사이 간격을 넓혀 이를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반영한 것도 윤 센터장이었다. 장한석 서울응급의료지원센터 선임연구원은 “당시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응급실 환자를 통해 감염병 감시 체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동료들은 윤 센터장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낀다. 의료기관 이용 제약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이른바 ‘초과 사망’ 때문이다. 허탁 교수는 “한덕이가 있었다면 비(非)코로나 응급환자의 이송 체계, 지정병원 운영을 더 적극적으로 논의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유품엔 윤 센터장의 고된 하루와 오랜 꿈이 담겨 있었다. 집에도 가지 않고 쪽잠을 자던 간이침대는 윤 센터장을 기억하는 상징이 됐다. 딱딱한 마사지 침대에 윤 센터장의 부인이 라텍스를 덧대 만든 것이다. 닥터헬기 도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윤 센터장의 유일한 취미는 모형비행기 조립이었다. 동력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분해한 낡은 휴대전화도 유품 목록에 포함돼 있다.
한편 전남대 의대 동문회는 공공의료 발전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윤한덕상’ 첫 수상자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선정했다.
광주=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