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檢수사가 조속한 실체 규명에 효과적” 의견
사진 뉴시스
여권이 검찰을 견제하고 검사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설립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직후부터 검찰과 사건 이첩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별장 성접대 의혹’을 받았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다. 박 후보자는 “현재 상태에서 이첩하는 게 옳겠다”고 답했다.
현행 공수처법 25조 2항에는 ‘수사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검찰이 수사 중인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는 가짜 내사번호를 적어 김 전 차관을 불법적으로 긴급 출국 금지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규원 검사를 비롯해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검사들이 수사 대상에 올라 있어 법에 따르면 공수처로 이첩해야 하는 상황이 맞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News1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이첩한다면 공수처 조직이 꾸려질 때까지 수개월 간 사건을 그냥 묵히게 된다”며 “적시에 빠르게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수사의 기본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사를 하다가 중단하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시간을 벌게 되는 범죄 혐의자들이 가장 좋아할 것”이라며 “수사할 사람도 없는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것은 수사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21일 취임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이르면 이번 주 공수처 2인자인 차장을 임명 제청하고 2월부터 검사 23명과 수사관 30여명을 채용하는 절차에 나설 계획잍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는 것은 ‘조속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국민의 바람과도 어긋난다는 의견이 많다.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검찰 수사팀은 21일과 22일 이틀간 법무부와 대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 이 검사의 자택과 공정위 파견 사무실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인 후 관련자 소환 조사를 병행하며 사건의 실체에 빠르게 접근해가고 있다. 그런데 수사가 탄력이 붙고 있는 이런 때에 다른 기관으로 사건을 이첩하게 될 경우 효과적인 수사 방안을 고민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검사 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현행 공수처법으로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수처법 24조 3항에는 ‘처장은 피의자, 피해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추어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적으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에 있어 공수처가 우선권을 갖는 것은 맞지만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효과적이라고 공수처장이 판단할 경우에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