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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이 불지른 美의사당 난입… 정치 양극화 떨쳐야 민주주의 복원[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1-01-11 03:00:00

트럼프가 남긴 것과 바이든이 갈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한 미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워싱턴=신화 뉴시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이달 6일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 목격했다. 새로운 대통령으로의 정권 교체를 위한 마지막 요식행위를 앞두고 벌어진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이날 예정됐던 상하원 합동회의는 각 주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최종적으로 인준하는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실제로 각 주의 투표 결과를 투표함에 넣어 수도 워싱턴으로 옮겨 그 함들을 개봉하고, 선거 결과 내용이 실제 선거 결과와 차이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나, 통신이 발전한 현 시대에는 헌법에 명기된 절차를 단순히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조 바이든의 당선을 헌법 절차에 따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일 뿐, 그 과정을 뒤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 하나, 주의 선거 결과에 대해 그 주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상하원에서 각각 투표를 거쳐 이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주의 선거 결과는 계산에서 제외할 수 있다.

○ 현직 대통령이 불붙인 폭력행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앞에 모인 군중에게 “당신들의 목소리가 의회에 들리게 하라”고 연설했다. 그가 실제로 이 마지막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바이든 당선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인단 획득이 전체 투표와 차이가 났던 2000년 조지 W 부시 대 앨 고어, 2016년 트럼프 대 힐러리 클린턴 선거 결과 인준 과정에서도 일부 주의 하원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적은 있다. 그러나 폭도들이 이 과정에 난입했다는 것, 그리고 폭도들의 행동에 불을 댕긴 것이 현직 대통령이란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충격을 안겨줬다.

미국 민주주의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취약한 면을 드러냈기 때문에, 20일부터는 트럼프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태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마디로 밑바닥을 쳤기 때문에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면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돌아오는 것인가?

이번 사태 이후 수정헌법 25조 4항을 이용해 부통령과 내각이 대통령직을 박탈하는 방법, 그리고 의회에 의한 탄핵이 논의되고 있다. 폭도들을 선동한 트럼프를 처벌하고 그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라는 개인이 문제였다는 인식에 따른 해법이다. 트럼프만 아니면 되는 것인가? 또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없는가? 트럼프 같은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 규범과 타협 자리 대신하는 포퓰리즘


다시 2016년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가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혼란에 빠졌다. 이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 되는 건가? 그래도 많은 국민이 택한 후보인데, 다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 아닌가? 그리고 한구석엔 ‘지금은 말을 저렇게 해도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겠지, 미국의 대통령인데’ 하는 생각도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잡게 되는 과정에서 그를 견제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과연 제도의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모든 상황에 대해 완벽한 대비를 해놓을 수 있는 제도는 있을 수 없다면서 민주주의는 규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규범이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를 의미한다. 트럼프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규범을 지키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형식마저 폭력으로 파괴하려는 시도를 선동 내지 방조했다는 측면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나타날 수 있는 토양이 배양되고 있었다.

헌법과 제도 측면에서 민주주의라는 틀은 유지되나 그보다 중요한 규범은 사라졌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에 빌 클린턴, 부시, 버락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타협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상대 정당을 다른 의견을 가진, 그렇지만 타협해야 하는 경쟁자로 보는 게 아니라 끝끝내 물리쳐야 하는 적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협은 곧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을 잡으면 법 안에서 주어진 모든 법적 권한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무력화한다. 나와 다른 정당의 대통령이라면 그가 하는 모든 입법 행위를 막아서고, 대통령은 타협을 통한 입법 대신에 행정명령으로 대체하는 게 일상화됐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이 몇몇 핵심 의제로 뭉친 정당이 아니라 ‘정체성의 정치’를 하는 집단으로 변화하면서 타협은 더 힘들어졌다. 우리가 아는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복리와 같은 정치적 이념의 차이보다 백인과 유색인종, 개신교와 비개신교 같은 인종과 종교를 중심으로 정당의 지지층이 재편되면서 타협과 관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당을 내 정체성과 동일시하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내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의회 난입 사태를 주도한 대부분이 백인이고, 또 만약 이 시위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였다면 경찰이 이렇게 대응했겠냐고 비난하는 것 모두 정체성의 측면에서 해석이 된다.

○ ‘목적’이 사라지자 퇴행하는 민주주의


공화당은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된 후 트럼프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가 약 7500만 표를 얻고, 그의 지지층이 압박하고, 또 트럼프 본인이 마지막까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화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공화당 지도부가 이제라도 정당의 역할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국민의 뜻이 중요하지만 과거 미국 건국 당시 알렉산더 해밀턴이 우려한 대로 대다수 국민이 호도돼 선동가를 선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트럼프의 당선으로 증명되었다. 국민이 ‘좋은’ 후보를 두고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의 역할을 방임한 결과였다. 아무리 이상한 후보라도 상대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트럼프를 제도권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민주주의의 목적을 생각하기보다 민주주의라는 틀을 이용하는 데만 몰두한 결과물이다.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실패는 과거 냉전 시기 군부세력의 쿠데타와 같은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 국가가 정한 헌법과 법률의 절차에 따라 선거에서 당선된 지도자들이 당선 이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독재정치로 나아가는 과정도 과거처럼 정적을 무조건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의 틀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고쳐지기는 한다. 양극화된 정치 환경이 토양을 이루고 포퓰리스트 정권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면 결국 정치가 없어지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틀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공화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지만 인준 과정에서 2016년 경선에 나섰던 테드 크루즈 의원을 포함한 공화당 상원의원 7명은 트럼프의 의견에 동조했다. 여전히 포퓰리스트 정치의 그늘에서 본인의 정치적 이익을 계산한 결과다. 바이든의 민주당은 간신히 상원 다수당이 되었다. 트럼프는 물러나지만 트럼프가 등장한 배경은 아직 그대로다. 바이든의 민주당, 트럼프를 겪은 공화당은 무엇을 보았는가. 과연 미국인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민주주의의 규범을 다시 떠올렸을까.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달리는 호랑이와 같다. 누군가 길들이지 않으면 멈출 방법이 없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호랑이 등에 올라탈 생각을 버리고 호랑이를 길들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