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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깐깐, 꼼꼼해진 콘텐츠 이용자들 가차없이 “가불구취”

입력 | 2021-01-04 03:00:00

‘뒷광고’ 한혜연 채널 개점휴업
성상품화 비판에 넷플릭스 진땀
Z세대, 동영상에 적극 의사 표시
서비스업자들 윤리성 높이기 고심



넷플릭스 영화 ‘큐티스’가 성상품화 논란이 일자 털시 개버드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Cancelnetflix’ 해시태그를 달며 구독 취소 운동을 벌였다(위 사진). 이 운동은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은 유튜브에서 ‘뒷광고’ 논란에 휩싸인 뒤 사과를 했지만 구독자가 급감했다. 트위터·유튜브 캡처


“가치관과 불일치하면 구독 취소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17일 ‘콘텐츠 산업 2020년 결산과 2021년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콘텐츠 업계 키워드 중 하나로 신조어 ‘가불구취’를 선정했다. 콘텐츠 이용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행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는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이다. 가치관은 물론 윤리나 취향과 어긋나는 콘텐츠 및 채널은 구독 취소라는 방식으로 가차 없이 쳐낸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구독 취소는 콘텐츠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여기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도한다. 사회적 차별, 정치적 올바름, 환경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들이 ‘내가 보는 콘텐츠는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콘텐츠에는 “불공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는 보지 않겠다” “이 콘텐츠를 보면 나도 불공정한 사람”이라고 댓글을 달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구독 취소 운동을 이끈다.

구독 취소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플랫폼은 이용자가 구독한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자동으로 보여주는 유튜브다. 지난해 7월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을 리뷰한다며 올린 영상이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받은 간접광고(PPL)임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86만 명이었던 구독자 수는 1주일 만에 7만 명 정도가 줄었다. 한혜연은 사과 영상을 올렸지만 “이제 언니 영상 안 볼래요” “오늘부터 구독 취소”라는 댓글이 달렸고 채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구독경제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넷플릭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영화 ‘큐티스(Cuties)’가 여자아이들을 성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국에서 구독 취소 운동이 벌어졌다.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에 올라온 넷플릭스 구독 취소 청원에 65만 명이 동의했다. 넷플릭스 구독 취소율이 한때 일일 평균 해지율보다 8배 이상 높아졌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도 ‘#Cancelnetflix’ ‘#boycottnetflix’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만 개 올라왔다.

방송사만큼 영향력이 커졌지만 아직 규제가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는 OTT 기업으로선 이용자들의 높아진 윤리적 잣대를 스스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OT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Z세대가 OTT의 주 소비자인 만큼 구독 취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며 “구독 취소 운동이 커지면 정부가 심의 권한을 높이는 등 규제를 할 근거가 돼 이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유료 콘텐츠를 쉽게 구독 취소하도록 돕는 규정이 생기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아 프리미엄 서비스를 중도에 해지하면 남은 기간을 환불해주기로 했다. 넷플릭스도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해지할 때 1개월 단위로만 환불을 해주던 현재 제도를 1일 단위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윤리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장은 “구독을 한 이용자는 언제든 구독을 취소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이용자를 잡기 위한 보다 꼼꼼하고 깐깐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콘텐츠로 사회적 가치를 소비하는 흐름은 계속해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