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인 25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장승윤 사진부 차장
코로나19가 창궐한 올해도 명동은 자주 갔다. 하지만 그전과는 다른 풍경을 찍기 위해서였다. 네 집 건너 폐업한 상점들, 온기를 찾을 수 없는 썰렁한 거리. 골목마다 중국어를 비롯한 각종 외국어 호객 행위로 시끌벅적했던 명동에는 1년 내내 적막감만 감돌았다. 명동이 이렇게 무너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요즘 명동에 나가면 재난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드는 것과 비슷한 엄숙함이 밀려온다. 어쩌다 절망의 표정을 짓고 있는 상인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에 시선을 돌린다.
다시 데스크의 문자가 왔다.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 가서 ‘코스피가 2,800을 넘어선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다. 너무도 다른 모습이 하루 사이에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 혼돈스럽다. 마감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거리의 광고판이 보인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써야 마스크 없는 세상이 옵니다.” 어느 마스크 회사의 광고다. 마스크 만드는 회사의 목표가 마스크 없는 세상이니 2020년은 이렇게 아이러니 속에서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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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몇 명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선별검사소 사진을 찍을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피해 취재해야 하기에 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올 초부터 코로나 관련 선별검사소, 음압병동, 마스크 쓴 시민들, 썰렁한 거리, 폐업한 가게 등을 수시로 찾아다녔다. 확진자 수가 늘어난 9월에도 다시 이곳들을 찾아야 했고, 이젠 끝이겠지 생각했는데 12월이 되니 다시 같은 일을 해야 한다. 올 초 사진과 최근 사진 두 장을 비교해 보니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같은 곳에서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니 당연한 일이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망원렌즈로 들여다볼 때면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올랐다. 산꼭대기에 돌을 올려놓으면 그 돌이 다시 떨어지고, 다시 올려놓으면 또다시 떨어지는 일의 무한반복이니 말이다. ‘겨울이면 끝이 보이겠지’라는 모두의 염원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확진 소식에 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사진부는 매년 연말 기획 사진을 준비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호와 희망을 담은 신년호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둘 다 준비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고 새해가 된다 한들 뚜렷한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원 중 누군가가 회의 시간에 푸념 삼아 말했다. “이러다가 신년호에 12월 31일 폐쇄된 보신각 종 스케치 사진이 채택되는 것 아닐까?”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보신각 종이 울려야 새해가 시작되는데 올해는 타종 행사마저 현장 행사 대신 온라인으로 열린다. 마치 2020년이 영원히 비대면의 늪에 빠진 것처럼.
도돌이표는 음악을 연주할 때 어느 부분을 되풀이할지 표시해준다. 코로나19가 망쳐 버린 우리의 일상이 대체 어느 부분부터 다시 반복될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도돌이표는 연주를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다카포’와 다르다. 지나온 터널이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도돌이표의 ‘1, 2번’ 표시처럼 비상구는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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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