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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세균을 서울시장으로 내몰고 있나 [이종훈의 政說-08]

입력 | 2020-12-13 12:41:00


정세균 국무총리. [동아db]

10월 19일 갑자기 ‘정세균 서울시장 차출설’이 불거졌다. 서울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정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뒤진 직후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TBS 의뢰로 실시한 10월 2주 차(12~14일) 주중 잠정 집계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서울지역 정당 지지율이 직전 주 대비 3.5%p 상승해 32.8%를 기록했다. 반면 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27.6%로 하락했다(해당 조사는 10월 12~14일 사흘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3만4889명에게 통화를 시도한 결과 최종 1506명이 응답했다. 응답률은 4.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이른바 ‘오차범위 5%’를 넘어 역전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강력한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국회의장에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거물 정치인에게 어울릴 법한 설정은 아니다. 당시 정 총리와 함께 거론된 인물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다. 정 청장은 K-방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치 경력도 없어 참신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장으로 거론될 법하다. 두 사람 모두 차출설을 부인했는데, 정 총리는 측근들에게 “차라리 진안군수로 봉사하면 했지 서울시장을 하겠느냐”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장 차출설에 진안군수 출마라는 극적인 대비로 응수한 까닭은 뭘까. 불쾌하다는 뜻이다.


○ 대선캠프 같은 국무총리 특보단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11월 6일 국무총리비서실에 새롭게 직제를 만들어 그린뉴딜, 보건의료, 국민소통 등 3개 분야에서 각각 특별보좌관 1명과 자문위원 2명씩 모두 9명을 임명했다. 12월 3일에는 부동산, 디지털경제, 저출생-고령화 3개 분야를 추가해 같은 형식으로 9명을 임명했다. 외부에서는 이 특별보좌관·자문위원단(특보단)을 사실상 대선캠프로 본다. 이뿐 아니다. 정세균계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 역시 최근 50명 이상으로 규모를 확장한 상태에서 10월 26일부터 서울 여의도에서 매월 공부모임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속에서 불거진 차출설이라 정 총리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세균 총리와 정은경 청장의 차출설이 불거진 직후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정 청장의 차출설에 대해서만 이렇게 지적했다. 

“시중에 정 청장의 서울시장 차출설이 돌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프닝이라 생각하지만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정 청장 서울시장 차출설은 전혀 검토한 바 없고 아무런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을 뜬금없이 정치권에 끌어드리는 것은 옳지 않은 행위이고 정치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언론보도 자제를 당부 드린다.” 

요약하면 첫 보도를 낸 ‘조선일보’가 악의적으로 기사를 썼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 총리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허무맹랑함을 넘어선 황당한 이야기라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국무총리라 감히 언급하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또는 다른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일까.


○ 서울시장 차출설 진원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동아db]

보수언론이 첫 보도했기 때문에 국민의힘 쪽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이 아니냐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해당 보도 내용을 보면 인용 대상이 주로 민주당 관계자다. 이 모든 게 조작된 것이라면 보도 자제를 당부하는 정도로 대응하지 않았을 테다. 뒤집어 말하면 차출설 진원지가 민주당 쪽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맥락상으로도 이해가 간다. 서울지역과 부산지역 민심이 돌아섰다는 것은 차출설이 불거질 즈음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고 있었다. 당연히 중량급을 투입하자는 말이 나올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정 총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경우 경쟁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 총리는 2012년 총선 당시 당에서 중진 험지 출마론을 주도하며 내리 4선을 한 호남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승리한 전적이 있기도 하다. 이 정도 저력이면 험지로 변한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에서도 선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선 출정 준비에 한창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 그것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 보이는 국면에 차출설을 누군가 유포했다면 분명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누굴까. 어느 쪽일까. 만약 당내에서 누군가 퍼뜨렸다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쪽은 정 총리와 당내 경선을 치를 대권주자군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 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쪽일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 가운데 굳이 꼽자면 아무래도 당권을 쥐고 있는 쪽이 더 개연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환경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쪽은 친문(친문재인)계다. 아직 친문계를 대표할 만한 대권주자가 나온 것은 아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대안 찾기에 나섰다는 말만 무성한 상황이다. 그래도 끝내 누군가를 내세울 것이 분명하다면 친문계 역시 정 총리를 서울시장 출마로 돌려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당내 경선만 놓고 본다면 이낙연 대표나 이재명 도지사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정세균 총리이기 때문이다. 

정세균계, 흔히 SK계로 불리기도 하는 당내 세력은 범친문계 다음으로 손꼽힐 정도로 규모가 크다. 당내 조직 기반이 취약한 이 대표나 이 도지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친문계가 민주당 주류로 부상하면서 뒷전으로 밀려 부활을 노리고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당연히 응집력도 그만큼 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똘똘 뭉쳐 움직이기 시작하면 친문계 대권주자 아무개가 당내 경선에서 의외로 고전하거나 패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리 견제하는 게 최선의 방안일 테다. 만약 친문계 쪽에서 정 총리 서울시장 차출설을 흘린 것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그 움직임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봐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민주당의 전국 정당지지율 역시 국민의힘에 밀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1월 30일부터 12월 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간 집계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전주보다 6.4%p 하락한 37.4%였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31.3%, 민주당 29.7%로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또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2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묻는 조사에서도 ‘그렇다’는 응답은 1주 전보다 1%p 떨어진 39%로, 취임 후 최저치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어두워진 여권의 재보선 전망

이재명 경기도지사. [동아db]

이런 추세라면 10월과 비교했을 때 내년 재보선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가다 정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레임덕이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친문계의 위기감 역시 더 고조됐을 것이다. 당내 주류인 친문계가 공식적으로 정 총리에게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종용한다면 정 총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선 준비를 접고 서울시장 출마로 급선회할까. 기본적으로 정 총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 정식으로 제안을 받으면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이런 속에서 당장 2차 개각 문제가 걸려 있다. 본인은 차기 대선 준비 차원에서 정치권으로 복귀하고 싶겠지만, 문 대통령이 극구 붙잡는다면 확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붙들리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피할 수 있지만, 차기 대선 출마 준비도 힘들어질 수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제안을 수용하고 또 출마해 당선한다면 당연히 차기 대선에 나설 수 없다. 차차기로 미뤄야 하는데, 문제는 나이가 될 것이다. 출마했다 낙선해도 향후 대선 도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 추세로 접어든 속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진다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할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당내 주류인 친문계 내 지지 기반 확대다. 그런데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이 정 총리를 친문계 적자로 여기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로 ‘모양이 빠지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국무총리 제안을 수용했을 때 국회의장 출신이 국무총리를 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에 이미 휩싸인 바 있다. 3권 분립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물며 서울시장이라면 급을 아예 낮추는 것인데, 자리에 탐욕적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비판론이 일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이 더 어려운 국면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정 총리 입장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카드는 독배로 여겨진다. 험지 출마라는 대의명분에 더해 위하는 척 보이는 착시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지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 총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주는 것이 친문계 입장에서도, 이낙연 대표나 이재명 도지사 입장에서도 바라는 바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정 총리 차출설을 현실화하려 들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만약 정 총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면 국민의힘은 어떻게 대응할까. 여론조사 추이를 볼 때 여전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떼놓은 당상’이라 생각하고 말까, 아니면 긴장할까. 긴장 모드로 접어들 것으로 봐야 한다. 어찌됐건 정 총리가 선거 강자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