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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지기’ 살해…‘자고 가라’ 말이 결국 참극으로

입력 | 2020-11-21 07:30:00

© News1


2020년 2월 어느 날, 서울남부지법 4층 법정에서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32)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검사는 공소장을 차분히 읽었다. “피고인은 경찰 공무원인 피해자와 동창으로 결혼식 사회를 봐줄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푸른색 수의를 입은 A씨는 피고인석에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 유족들의 오열 소리가 법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A씨는 국내 주요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경찰 공무원인 B씨(32·사망)와는 대학 동기·동창이다. B씨가 지난 2018년 겨울 결혼할 당시 A씨는 사회를 맡을 정도로 두 사람은 ‘지기’였다.

그로부터 8개월 뒤 두사람 모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A씨가 성범죄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혐의가 사실로 입증돼 처벌 받는다면 A씨는 미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된다면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할 수 없다.

실직 두려움이 A씨를 감쌌다. 즐겨 마시던 술도 끊었다. 3개월 뒤 수사기관의 판단은 불기소 처분(혐의 없음)이었다.

승무원의 꿈을 이어가게 된 그는 ‘절친’ B씨와 술자리를 약속한다. 수사 받던 당시 A씨에게 경찰관인 B씨는 수시로 전화해 조언하고 위로했다. A씨는 B씨와의 약속 자리에서 3개월 만에 술을 마신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하루 날을 잡고 오후 7시20분부터 다음 날 새벽 1시20분까지 주점 3곳을 다니며 소주·맥주·위스키·칵테일을 들이켰다. 마지막 주점에서 B씨의 취한 모습을 본 A씨는 “그만 가자”고 말했다. 밖을 나와서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였다. “저리 가라고” “그만 가자고” “안 취했다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

A씨는 B씨를 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B씨는 이곳에서 잠자길 원하지 않았다. 주짓수 수련자인 A씨는 안방에 있던 B씨와 몸싸움을 벌였다. A씨는 경찰 조사로 받았던 스트레스 등의 영향으로 감정이 폭발하고 있었다.

A씨의 일방적인 폭행이 시작됐고 안방 벽면에 선혈이 낭자했다. B씨는 이후 그대로 방치된 채 결국 숨을 거뒀다. 사인은 ‘머리덮개 손상으로 발생한 과다출혈과 얼굴 손상에 따른 기도막힘 질식’이었다. A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쟁점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였다. A씨는 재판에서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고 설령 고의가 인정된다고 해도 ‘미필적 고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인 B씨가 다량의 피를 흘리고 있었던 점, 범행 장소였던 안방에서 나와 씻고 여자친구 집에 가서 또 한 차례 샤워를 하고 잠을 잔 점 등 범행 이후 행동을 봤을 때 A씨가 B씨의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는 지난 6월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18년에 보호관찰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혈흔 흔적을 분석해보면 피해자는 저항 능력 없이 피고인에게 완전히 제압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얼굴을 위주로 수차례 가격했다”며 “피고인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인식한 상황에서 반복적인 공격을 했고 범행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이러한 행동은 이기적이고 죄질이 나쁘다”며 “피해자의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고 장기간 속죄하고 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법정에 온 B씨의 어머니는 선고가 끝나자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울음소리가 법정을 덮었다. 유족은 “A씨가 다른 사람을 때려 살해할 수 있다”며 “18년보다 더 강한 엄벌을 처해달라”고 소리쳤다.

A씨는 이날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고, 항소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