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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교수 “부산시장 피해자의 격분, 성범죄 피해 부인하는 듯한 발언 때문이다”

입력 | 2020-11-07 21:38:00


이수정 교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더라도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한다. 사진 조영철 기자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정옥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이 11월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실시되는 내년 보궐선거 비용 838억 원에 대해 이같이 답해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다. 이 장관은 “성폭력 피해 문제가 정쟁화되는 것은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선거와 결부되면 과잉 정쟁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하면서 “박 전 시장과 오 전 시장 사건이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야당은 “여가부 장관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면서 사퇴 요구와 함께 여가부 해체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황규환 부대변인은 “여가부 장관이 아닌, N차 가해자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여가부 장관이 눈치와 심기를 살펴야 하는 것은 집권 여당이 아닌 성폭력 피해 여성과 여전히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 대한민국 여성들”이라고 비판했다. 오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당일 성명을 통해 “내가 학습교재냐”며 울분을 토했다. 

20여 년간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싸워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봤다. 이 교수는 “(성범죄) 피해 여성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면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를 한 후 이 교수의 답변을 정리했다. 이 교수는 7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 합류하며 여성의 인권과 성범죄 해결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다짐도 했다.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라”


-여가부 장관의 발언으로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다. 

“여가부 장관은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한국 사회에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될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한 듯하나, 피해 당사자에 대한 배려는 충분하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가 분노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번 일은 피해자 중심주의로 사건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준다.” 

-야당 대변인이 ‘N차 가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 피해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피해를 당했는데, 심지어 전 부산시장 피해자는 피해가 입증돼 재판이 진행 중인데 (여가부) 장관이 그 피해와 피해자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주축으로 전국 290여 개 여성 인권단체가 모여 구성된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그 논리대로라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오거돈과 고(故) 박원순 시장은 전 국민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말인가”라고 되물으며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또 “피해자는 국민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시켜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면서 “이제까지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여가부 수장이 이러한 관점으로 기관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두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특별위원회에 참여한 계기였나. 

“시작은 8세 아동에게 성범죄를 범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이 12월 출소한다는 소식이었다. 그가 출소하면 당장 피해자가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올해 들어서부터 왜 피해자가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방자치단체장과 연관된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다. 그 용어가 등장했을 당시 한 언론에서 ‘피해자가 맞냐, 피해호소인이 맞냐’고 물어왔다. 당시 ‘나는 피해자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피해호소인은 생전 처음 듣는 얘기다’라고 답했다. 피해를 당했는데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지 말라니, 인정해주지도 않고 심지어 듣기도 거북해하는 분위기라니. 20년 동안 살인 사건 기록과 피해자의 시신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누군가는 진실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매일 생각했다. 피해자 편을 드는 건 나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내가 비겁하게 현실과 타협하면 죽어간 그 많은 여성에게 미안해서 안 된다.” 

-보수정당 합류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고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해온 입법 추이와는 다르다. 나는 보수형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범죄자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인권 침해적(일명 ‘조두순 격리법’)이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피고인은 범죄자라는 입장이다. 가장 약자인 어린이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범죄자 인권이 절대 가치라고 생각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 절대 가치로 보지 않는다”

이수정 교수는 "인간의 본성이 쉽게 바뀔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참여해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가 발의한 법안은 2가지다. 1호 법안은 ‘스토킹 처벌 강화법’으로 스토킹 범죄에 포함되는 행위를 명확히 하고 2차 피해 예방 및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호 법안은 일명 ‘조두순 격리법’(보호수용법)이다. 법안은 살인 2회 이상, 성폭력 범죄 3회 이상이거나 13세 미만인 사람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상해를 입힌 경우 법원에 보호수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서 ‘스토킹 처벌 강화법’과 ‘조두순 격리법’ 2가지 법안을 발의했다. 법제화까지 어떤 절차가 남아 있나. 

“먼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토론을 할 것이고, 합의가 되면 정식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법안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인권 침해적 논의도 있고….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 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나는 각종 인터뷰에 응하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이슈가 가라앉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성범죄 관련 법 제도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여성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강간죄 구성 요건을 가진 나라, 협박이나 폭행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하는 나라다. ‘피해자’라 부르기 싫어 ‘피해호소인’이라는 요상한 어휘를 만들어도 통용되는 나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이 유죄가 확정된 지금도 그 사실을 고발한 전 수행비서 김지은 씨의 기사에는 여전히 ‘내연녀’라는 댓글이 달리는 나라다. 진보와 보수 어느 편을 들겠다는 게 아니다. 구시대적인 가치관 체계로는 진보와 보수 다 비난받아 마땅한 과거가 있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는데도 여성 인권과 관련해서는 나아진 게 없다.” 

-스토킹 처벌 강화법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이다. 

“여성은 대다수가 같이 살거나 살았던 사람에 의해 살해된다. 스토킹 범죄자를 신고했는데 경찰에서 풀어줘 몇 시간 뒤 다시 찾아와 살인을 했다는 기사가 반복된다. 우리나라는 사회 자체가 여자를 소유물로 본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여성 인권을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 여성들도 환상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오랫동안 남성 성취 지향적인 가치 질서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여성이 그들의 질서 속에서 생존하는 훈련을 받았고 여성의 아이덴티티(정체성)와 전혀 상관없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 재보궐선거 경선준비위원회에 합류한 것도 목소리를 내는 방법인가. 

“경선준비위원회 위원으로서 내 역할은 권고 정도겠으나 여성의 비중이나 양성평등적 입장이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어쩌면 내 존재가 민주당에 더 부담을 주고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여성 인권에 하자가 없는 인물을 고른다거나 여성 후보를 낸다든가 하는 노력 같은. 나를, 여성들을 의식하고 후보를 선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이사 가는 나라는 되지 말아야”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지켜줘야 하나. 

“적법한 절차대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있다. 형사 책임을 다한 후 자유인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재범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대부분 재범의 연속이다. 범죄심리학자 입장에서는 바깥에서 산 기간보다 수용 기간이 더 길면 갱생 불가 판단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위협을 유발하는 사람의 권리만 중요하다고 여기면 안 된다. 그 지점에서 인권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심리학자인 나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 인권을 중시하는 이들은 또다시 누군가를 죽인다는 보장이 없으니 일단은 당사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나는 피해자가 죽고 난 다음에는 소용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사진 조영철 기자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