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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슬픔이 큰들 내 ‘눈이슬’만 하랴

입력 | 2020-11-05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3> 세상의 어떤 눈물보다…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일즈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전부인의 재혼과 임신 사실을 알고 상심한다. 동아일보DB

프랑수아 지라르의 영화 ‘레드 바이올린’(1998년)에서는 17세기 만들어진 바이올린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과 만나 빚어지는 다양한 사연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바이올린처럼 사물(事物)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한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813∼858년)의 시 ‘눈물(淚·루)’이다. 여섯 번째 구절까지 매 구절이 눈물과 관련된 대표적인 옛이야기를 담고 있다. 곧 전고(典故·역사적 유래가 있는 어휘나 이야기)를 가져온 것이다. 첫 줄부터 차례대로 △궁정의 여인이 황제의 총애를 잃어서 △아내가 떠난 남편이 고생할까 걱정돼서 △두 왕비가 순임금의 죽음을 슬퍼해서 △백성들이 세상 떠난 장군을 추모해서 △궁녀 왕소군이 원치 않게 오랑캐 나라로 시집가게 돼서 △항우(項羽)의 병사들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돼서 흘리는 눈물을 표현했다. 하지만 정작 시에서 눈물이란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사물을 대상으로 한 영물시(詠物詩)에선 제재를 직접 언급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시가 여러 사례를 나열하는 별난 구성 방식을 취한 이유는 마지막 구절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장구한 역사 속 눈물에 관한 대표적 이야기를 나열한 것은 한미(寒微)한 처지의 시인이 출세한 동료를 보내며 흘리는 자신의 비참한 눈물에는 무엇도 견줄 수 없음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와인에 대한 영화인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웨이’(2004년)에서도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나의 눈물이 나온다. 와인 애호가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주인공 마일즈는 전처(前妻)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어느 날 마일즈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재혼해 아이를 가진 전처를 만난다. 마침 출판사로부터 자신의 소설 출간을 거절당한 차였다. 전처에게 애써 축하를 전하지만 참담한 마일즈는 피로연에도 참석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카메라는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간직해온 와인을 홀로 마시는 마일즈의 슬픈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우리네 삶도 큰길이 아니라 갓길로 내몰릴 때가 있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타인의 성공은 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래서 내 절망의 눈물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는 후대 비평가로부터 격이 낮고 속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눈물이 세상의 어떤 눈물보다 슬프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고백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눈물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세상의 어떤 눈물과도 결코 견줄 수 없는 ‘나’의 눈물을.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