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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수사권 독립 앞둔 경찰, 이춘재 부실수사 뼈아프게 돌아봐야

입력 | 2020-11-04 00:00:00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그제 ‘8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의 재심사건 공판 증인으로 나와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폭행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 이춘재는 범행 후 시신을 살해현장 인근 수풀에 숨기는 등의 작업 이외에는 별달리 완전범죄를 위한 치밀한 계획 같은 것을 짠 적도 없다며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수색인력까지 포함해 연인원 200만 명을 동원했고 수사 대상자만 2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춘재는 그 지역에 내내 살았는데도 겉치레 검문만 받았고, 성폭행 피해자와의 대질신문을 위해 경찰서에 불려갔을 때도 소리를 치며 항의하자 그냥 풀어줬다고 증언했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면한 희대의 살인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피해자들의 영혼이 들었다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연쇄살인 범행이 저질러졌던 30여 년 전의 경찰과 지금의 경찰을 단순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수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게 된 경찰은 이춘재의 증언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사 체계에 의외의 빈곳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면밀히 돌아봐야 한다.

지금의 경찰은 과학수사 인프라에 있어 선진국도 부러워할 정도로 뛰어나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이춘재가 진범임을 밝혀낸 것도 유전자분석 등 과학수사능력이 결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는 살인사건 같은 강력범죄나 보이스피싱 같은 민생침해 범죄를 쫓는 형사·수사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고질화돼 있다.

역대 정권마다 경찰 지휘부는 권력층이 활용하기 용이한 정보, 경비, 기획통들이 차지해왔다. 이런 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수사권 독립에 걸맞은 수사역량을 갖추기 어렵다. 형사·수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을 중용해 사기를 높이고 수사 노하우를 축적해 가야만 천인공노할 연쇄살인범이 끝내 처벌을 면한 채 “경찰수사가 보여주기식 수사였다”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