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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형, 형, 그리고 안녕[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

입력 | 2020-10-30 03:00:00


가객으로 불린 고 김현식의 생전 모습.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그의 수식어에 ‘객’이 붙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땅 위에 조용필이 있었다면 땅 밑에는 김현식이 있었다고나 할까. 김현식의 부상은 그처럼 언더그라운드의 승전보였기에….’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여기 현식이 형이 자주 오던 덴데….”

몇 년 전,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조촐한 술자리였다. 2차로 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술집에서 누군가 저렇게 운을 뗐다. 퍽퍽한 마른안주에 오백 잔을 꺾으며 우리는 그렇게 현식이 형 생전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객(歌客) 김현식(1958∼1990) 이야기다.

일면식이 없었어도, 우정으로 맺지 못했다 해도 먼저 떠나면 형이 된다. 음악인들은 왠지 그렇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이다. 다음 달 1일은 현식이 형의 30주기, 재하 형(1962∼1987)의 33주기가 되는 날이다. 며칠 전 해철이 형(1968∼2014)의 기일(27일)이 지났다. 앞서 두 형도 살아 있다면 50대, 60대이겠으나 그래도 어쨌거나 막무가내로 형이다. 내 나이가 그의 마지막 나이를 추월한대도 소용없다. 한번 형은 형이다.

#1.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이맘때면 들려오는 ‘내 사랑 내 곁에’는 현식이 형의 유작이 된 6집(1991년) 수록곡이다. 시계를 앞으로 돌려볼까. 그의 활동기간이 고작 11년이니 바늘은 아주 조금만 감아도 된다. 1980년 김현식 1집 첫 곡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다. ‘봄이 오면 강산에 꽃이 피고∼’ 하는 노래. 이 노래에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이 나왔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왕(王)의 그룹이었다면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은 객(客)의 밴드였다. 주류 가요계에 영합하기보다 객으로 남은 현식이 형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중요한 정거장이었다. 환승 정류장쯤이라 해두자.

#2.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첫 건반주자가 재하 형이었다. 그는 앞서 위대한 탄생에 잠시 몸담았다가 조용필 7집(1985년)에 조용필의 목소리로 자신의 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남겼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만든 현식이 형 3집(1986년)에는 현식이 형의 목소리로 ‘가리워진 길’을 뿌렸다. 이 곡들은 재하 형의 유일한 솔로 앨범(1987년)에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우울한 편지’와 함께 재하 형 당신의 목소리로 담았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는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가 있었고, 재하 형의 후임이 박성식이었으므로 훗날 한국 시티팝의 전설로 회자될 ‘빛과 소금’(장기호 박성식)도 잠시 현식이 형의 품에 있었던 셈이다.

#3.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현식이 형의 목소리는 청춘의 단 몇 년 사이에 미성에서 탁성으로 변해갔다. 2집(1984년)의 ‘사랑했어요’와 6집의 ‘사랑했어요’(1991년)를 비교해 보면 확연하다. 5집(1990년)의 ‘넋두리’ ‘그 거리 그 벤취’만 해도 4집(1988년)의 ‘언제나 그대 내 곁에’에서 듣던 정제미를 내려놓은 현식이 형이다. 간경화로 스러져간 말년까지도 그는 폭음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쉰 목으로 비틀대는 ‘추억 만들기’ ‘사랑 사랑 사랑’ ‘이별의 종착역’ 같은 유작들은 안타깝게도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동차의 화려한 최종 질주였던 셈이다.

#4.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편에서/들려오는 멜로디 네게 속삭이지…’

해철이 형이 돌아가고 며칠 안 된 6년 전의 어느 날,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해철이 형의 노래를 랜덤 주행했다. 버스가 서대문을 지나 광화문 쪽으로 미끄러질 무렵에 하필 그 노래가 나왔다. 힘찬 현악과 록 사운드를 뚫고 안개 낀 해변의 아침 파도처럼 밀려오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인트로…. 뜻 모를 눈물이 흘렀다. 난 아직 형의 한마디에 무너지는 조그맣고 다 큰 아이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을 간질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어른이 될 시간이야….’

#5. 별다른 특별한 인연도 없는 종현 씨(1990∼2017)가 돌아가고 한동안 꽤 힘들었다. 그 뒤로, 뭔가 적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요절한 가수를 과하게 우상화하는 일은 피하겠다고 다짐했다. 닿을 수 없는 영원한 청년, 그 어떤 로켓으로도 도달 못 할 피안의 하늘에서 목소리만 남겨둔 그들을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마저 동경하는 것은 안 그래도 너무나 쉽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것은 어쩌면 그들을 향한 마지막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형, 이제 그만 안녕.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