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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서 일병과 이일병 사태의 공통점

입력 | 2020-10-05 16:19:00


법무부 장관 추미애의 아들 서모 씨는 뒤통수 맞은 기분일 것이다. 왜 하필이면 이름이 이일병이냐. 길고 긴 추석 연휴와 함께 서 일병의 군 특혜 휴가 의혹 사건도 잊히려는 찰나, 이일병의 미국 요트 구입 여행 사건이 터진 거다.

이일병은 외교부 장관 강경화의 남편이다. 2014년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를 마치고 명예교수가 됐다. 그가 미국 뉴저지 인근에서 2억 원 상당의 요트를 구입해 미 동부 해안을 여행하겠다며 3일 출국해 온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상에, 요트 여행이라니! 남자들의 로망인 차박(자동차+숙박)도 마음대로 못 하는 시절이다. 캠핑카까진 아니어도 뒷좌석을 눕힐 수 있는 승합차나 SUV만 있다면 경치 좋은 곳으로 달려가 낭만을 만끽하고픈 국민 천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정부 시책에 호응하겠다고, 착한 국민은 차박은커녕 고향 방문도 참는 판에 뭐, 장관 남편은 요트 여행을 떠났다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KBS 영상 캡처



● 장병 휴가도, 국민 이동도 기본권이다

서 일병과 이일병 사건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두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추미애는 “제 아들은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든지 보장받는 정당한 의료권과 휴가권을 법과 절차에 따라 보장받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2일 페이스북에서 재차 주장했다. 여권 일각에선 남의 일 같지 않은지, 엄마가 장관이라는 이유로 일반 장병들이 누리는 권리를 못 누리는 건 역차별이라며 “우리가 추미애다” 외치기도 했다.

강경화의 남편도 억울할 터다. 이일병은 출국 직전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제 삶을 사는 것인데 모든 걸 다른 사람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코로나가 하루 이틀 안에 없어질 것이 아니잖나. 만날 집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도 솔직히 틀리진 않는다. 단, 그의 부인이 대한민국 장관만 아니라면 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 공직자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있어야

여기서 두 번째 공통점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일로 주목받게 된 두 장관 역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추미애는 아들이 (특혜) 휴가를 받도록 압력을 넣은 바 없다고 지겹도록 강조했다. “보좌관에게 ‘지원장교님’의 전화번호를 전달한 것을 두고 보좌관에 대한 ‘지시’라고 볼 근거는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강경화 역시 여행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설득도 했다고 4일 밝혔다. 그런데도 “결국 본인이 결정해서 떠난 것”이라며 “오래 계획하고 미루고 미루다 간 거라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 국민이 괜히 심심해서 분노한다는 건가? 아니다. 그들은 고위공직자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 때문이다(남편은 직계가족에 속하지 않아 이런 표현을 썼다. 직계가족은 조부모와 부모, 자녀, 그리고 손자녀를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에게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용어지만 공직자의 가족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게 존재한다. 그걸 어겼다는 게 서 일병과 이일병의 세 번째 공통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 특혜 받은 계층에는 책임이 주어진다

남들이 다 해도 그들은 그러면 안 된다. 일반 장병들이 다 누리는 권리도, 일반 국민들이 다 즐기는 취미생활도 장관의 아들과 남편이 똑같이 누리는 건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서 일병의 어머니가, 이일병의 부인이 이 나라의 고위공직자이기 때문이다.

이일병은 일심동체 아닌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선 공직자의 배우자가 부정청탁이나 금품을 받는 것도 불법행위로 규정한다. 미안하지만 장관 부인, 그것도 외국 여행과 관련해 주무부서인 외교부의 장관 부인을 둔 이상, 이일병은 단순한 개인이 아닌 것이다.

이일병과 같은 연세대의 명예교수인 송복은 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구한 ‘특혜와 책임’을 썼다. 고위 정치인, 고위 관료와 법조인, 군과 경찰 등 ‘위세고위직층’이 상층에서도 최상층인데 이들 특혜 받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 때 선두에서 싸우다 목숨을 내놓거나, 위기 때 기득권을 내놓거나, 평상시 양보와 헌신의 희생을 하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김유신 장군 초상화



●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위해 목숨 건 적 있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위직 달랑 한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층에선 세습을 목숨처럼 중히 여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들 위세고위직층 아들딸의 혼사가 관심을 끌 것이며, 좋은 학교 보내겠다고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겠나.

학교 때 배운 ‘원술랑’이 생각난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를 공격하는 당나라에 맞서야 했던 시대, 원술이 김유신 장군의 아들이 아니라면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죽음보다 못한 굴욕을 당하진 않았을 거다. 송복은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원술랑 같은 신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찾았다.

군자(君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선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기 어렵다.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임진왜란 때는 물론이고 조선조 말 나라를 구하려 일어났던 의병은 고위직 출신이 아니라 보통의 선비와 평민이었다. 가황(歌皇) 나훈아가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 없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일 터다.

● ‘내로남불 문 정권’이 나라 망치는 이유

도덕성을 코에 건 문재인 정부를 절대로 조선조와 비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웃자고 시작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문 정권’ 농담처럼 노블레스와 거꾸로 가는 시대정신도 찾기 어렵다. 하긴 이 정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아깝다. 쉽게 말하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국민에게는 여행하지 말라면서 외교부 장관 남편은 여행해도 괜찮은 나라, 정치인 아들이 정치인 아들이라는 이유로 유명해지는 나라다. 심지어 우리 국민이 북한에 끔찍한 죽음을 당했는데도 5일 “힘들고 지칠 때 ‘언제나 내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는 용기와 자부심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대통령이 말하는 나라는… 아랫물이 흐려져도 되는 나라다. 이대로 망해도 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입이 아파도 다시 한번 말한다면, 고위공직에 앉은 당신들은 도덕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다. 추미애, 강경화가 핸드백 하나 제 손으로 안 들고 문고리 하나 제 손으로 안 열어도 될 만큼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국민이 당신들에게 세금을 바치는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서, 목숨을 바쳐야 할 정도의 위기 상황이 닥친다면 당신과 당신들 가족이 앞장서 나라를 이끌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게 싫다면 제발 고위직에서 물러나주었으면 한다. 곱게 먹은 송편이 체하지 않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