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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태권 전사 양성에 나선 까닭은?

입력 | 2020-09-24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2024년 파리 올림픽 태권도 金 목표
청소년·청년 선수 적극 육성… 한국인 지도자 영입하며 구슬땀
범죄 증가 속 이민세대 교육 활용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남부 퐁텐블로의 훈련장에서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 학생들이 태권도 겨루기 연습을 하고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 획득, 청소년 심신단련 등을 목적으로 태권도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프랑스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퐁텐블로=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빠샤!”

강렬한 기합 소리와 함께 발차기가 허공을 갈랐다. 곧 ‘펑’ 하는 타격음이 울렸다. 저 발차기를 직접 맞는다면 갈비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5일 오후 5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퐁텐블로의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캠프. 훈련장에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는 15∼18세 남녀 청소년 12명이 있었다. 가로 8m, 세로 8m의 도장에서 대련에 나선 선수들의 눈에는 자신감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도장 한쪽에는 노트북도 설치됐다. 선수 개개인이 겨루기 과정에서 얻은 득점과 실점이 보호구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노트북에 실시간으로 기록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태권도 은메달리스트이기도 한 코치 안카롤린 그라프 씨(34)는 “선수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 “파리 올림픽서 태권도 금메달 딴다”

이날 만난 12명은 전국에서 선발된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이다. 성인 국가대표가 돼 2024년 파리 올림픽에 프랑스 국가대표로 출전할 꿈을 갖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시로 검사를 받는 와중에도 열띤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12명 중 최연소인 타푸투 타마 군(15)은 본토가 아닌 남태평양 타히티섬(프랑스령)에서 자랐다. 부모와 형제 모두 태권도를 배워 타히티에서 ‘태권 가족’으로 유명했다고 했다. 그는 8세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전국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9월 14세 어린 나이에 상비군 캠프에 입소했다. 타마 군은 “태평양을 건너왔으니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며 의젓한 태도를 보였다.

코세 에스텔 양(16)은 와인 산지로 유명한 남부 보르도 인근에서 자랐다.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7세 때 태권도를 시작했다. 에스텔 양은 “태권도를 한다니까 친구들은 때리고 제압하는 것만 생각하던데 완전히 다르다”며 “절도 있는 동작, 정신 수양 등이 태권도의 매력”이라고 했다. 이어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 이를 위해 기술과 정신을 함께 단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 지도자도 영입

그라프 코치와 함께 이 12명을 지도하는 사람은 한국 국기원 소속 정우민 사범(34)이다. 그는 프랑스태권도협회가 2018년 한국 측에 “사범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로 건너왔다. 지난해 1월부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80kg 이상급에서 사상 첫 태권도 동메달을 땄다. 이후 5번의 올림픽 동안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땄지만 아직 금메달은 따지 못했다. 이에 정부와 프랑스태권도협회가 ‘프랑스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이제껏 따지 못했던 태권도 금메달을 획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종주국 지도자를 영입했다.

정 사범은 “태권도에 걸려 있는 총 8개의 금메달 중 2개를 따내는 게 목표”라며 “선수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만난 청소년들은 처음 보는 한국인 기자에게 먼저 찾아와 고개를 숙이며 한국식 인사를 건넬 정도로 수련 중 예의를 중시했다.

사실상 예비 국가대표나 다름없는 엘리트 선수이지만 이들의 일과는 평범한 청소년과 비슷했다. 아침에는 인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각각 등교해 오후 4시까지 일반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듣는다. 이후 오후 5시 반부터 7시 반까지 2시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 정신 수양·극기 등이 매력

현재 6700만 프랑스 인구 중 동양무술을 배우는 사람은 약 100만 명. 가장 저변이 넓은 종목은 유도로 약 53만 명에 달한다. 아직 6만 명에 불과한 태권도의 9배에 가깝다. 가라테 인구 역시 24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태권도의 상승세와 가라테의 하락세가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리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정식 종목인 반면 가라테가 제외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태권도는 무도(武道), 즉 정신 수양과 인성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사회의 호평을 받고 있다.

청소년 대표 상비군 주장인 로렌조 군(17)은 4세 때 TV에서 본 동양무술에 반해 유도, 가라테, 쿵후, 태권도 등을 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는 최종적으로 태권도를 선택했다. 그 이유로 “어릴 때 흥분을 잘하고 화도 많이 냈는데 태권도를 배우면서 감정 조절이 가능해졌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범 역시 “부임 초기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정신 수양에 집중했다. 학부모들도 예절 중시 교육을 반겼다”고 회고했다.

파리의 한 태권도장에 다니는 뒤랑 씨(27)는 “무술 하면 ‘겨루기’를 떠올리며 위험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태권도를 배운 후 생각이 바뀌었다. 남을 공격하기보다 자기 몸을 지키는 방어, 집중력, 참을성 등을 강조해 매력적이었다”고 설명했다.


○ 청년 범죄 해결에도 활용

정치권에서는 태권도를 교육 및 청소년 범죄 예방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파리 인근 에손 지역이 대표적이다. 에손에서는 2015년부터 태권도를 정규 과목에 포함시켰다. 처음에는 불과 75명이 배웠지만 5년이 흐른 지금 약 3000명이 일주일에 2번씩 태권도를 배운다. 프랑스인 사범들이 지역 12개 학교를 순회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는 최근 프랑스 사회의 화두인 ‘야만(ensauvagement)’ 논란과도 무관하지 않다. ‘묻지 마 범죄’, ‘사회 폭력’ 등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야만이 팽배해 프랑스 전체가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우려했다.

7월 남서부 바욘에서는 50대 버스 기사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20대 초반 청년 2명의 승차를 거부했다가 집단폭행을 당해 숨졌다. 같은 달 남동부 리옹에서도 한 여성이 2명의 청년과 말다툼을 하다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1999년 한 해 동안 2155건이었던 프랑스 살인(미수 포함) 사건은 2019년 3562건으로 약 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폭행(11만 건→ 28만 건), 납치(1600건→ 4200건), 협박(5만 건→ 14만 건) 등 주요 강력 범죄가 모두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 여론조사회사 엘라브 설문에서 응답자의 60%가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2%는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도 했다.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 불안 및 강력 범죄 급증과 이민자 증가가 관련 있다고 여기고 있다. 파리 15구 시민 가브리엘 씨(43)는 기자에게 “대놓고 말할 순 없어도 속으로는 이민자 증가가 범죄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인구의 약 10%인 670만 명이 이민자다. 이와 별도로 약 40만 명의 불법 체류자도 있다. 이들 상당수가 흑인, 무슬림 등 비백인계다. 빈부격차, 양극화, 소외감 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민 3, 4세대가 억눌린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하다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이에 일부 정치인은 인성, 예의, 인내 등을 강조하는 태권도 교육을 ‘공교육 및 인성교육 강화’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집권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 소속 하원의원인 피에르알랭 라팡 의원(37)이 대표적이다. 라팡 의원은 태권도를 다른 지역구에서도 정규 수업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파리 7구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에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태권도 교육도 실시된다.

파리 근교 쿠르브부아에 위치한 아르망 실베스트르 초등학교 역시 올해 안으로 정규 교과과정에 태권도 수업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우선 점심시간 혹은 방과 후 수업으로 태권도 교실을 시범 운영한 뒤 반응이 좋으면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다는 의미다. 학교 측은 “학부모, 학생들에게 태권도의 교육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공개 설명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