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이 올해 처음 여는 여름 클래식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독일 뮌헨 국립음대 교수)의 표정은 의외로 시종일관 밝았다.
14일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감수하고 어렵게 한국에 들어왔지만 그가 공들여 ‘올 베토벤’ 프로그램을 짠 클래식 레볼루션은 17일 개막 직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소속 교향악단이 출연하는 관현악, 교향악 공연들은 취소됐다.
광고 로드중
관현악 공연이 대거 불발되면서 23일 열리는 ‘체임버 뮤직 데이’(실내악의 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7시 등 이날 세 공연이 펼쳐진다.
“첫 콘서트에서는 자부심 있고 야망에 넘치는 초기의 베토벤을 만날 수 있죠. 두 번째 콘서트는 난청을 겪어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노력으로 극복하는 중기의 베토벤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콘서트는 제목이 ‘베토벤, 그는 철학자’입니다. 개인적 우울과 아픔을 극복한 후기의 베토벤입니다. 이 시기 그의 음악에는 세상의 비극과 관계없는 우주적 관점, 본질적 아름다움이 드러나죠.”
그는 미국 과학자 존 다이어먼드의 연구를 인용해 “환자들의 근육 테스트를 통해 음악이 주는 영향력을 연구했더니 베토벤의 음악이 가장 높은 영향력을 나타냈고, 특히 후기 실내악작품이 가장 높았다”고 소개했다.
광고 로드중
그는 이미 내년도 클래식 레볼루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내년 축제는 두 가지 주제로 펼쳐진다. 우선 탱고음악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 100주기를 맞아 피아졸라와 그에게 영향 준 바흐, 모차르트,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두 번째 주제는 ‘브람스’다. 브람스의 음악은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논리성을 보여주기에 내년에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그의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독일 제 방에는 바로 브람스가 사용하던 테이블이 있어요! 브람스가 딸처럼 아끼던 여성과 우리 부모님이 친하셨던 덕에 제 손에 들어온 거죠. 브람스의 테이블에서 받은 그의 정신을 한국 청중에게 잘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웃음)
이번 페스티벌 기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포펜’도 만날 수 있다. 25일 ‘포펜 & 김태형’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 5, 7번을 협연한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대(大)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와의 인연을 회상했다. “켐프 선생님은 무대에서 은퇴한 뒤였는데, 저를 초대해 매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한 곡씩을 함께 연주하셨죠. 그 집의 피아노는 소리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소나타 1번 안단테를 연주하실 때 선생님은 정말 놀랍도록 아름답게 선율을 연주하셨습니다. 제 삶을 바꿀 정도의 감동이었죠.”
그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를 여럿 가르쳐왔다. 한국 음악도가 최근 전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인은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들은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처럼 들린다. 그런 ‘노래적 성격’ 때문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국 음악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며 “한국 학생들이 ‘왜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모를 때가 많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다’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미술 감상, 책 읽기, 작곡가 연구 등을 통해 풍성한 내면을 기르기를 권한다”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