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씨 27년째 역사 가르치며 자료 수집… 기록 뒤에 숨겨진 시대의 삶 조명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걸 알고는 ‘내가 배운 역사는 반쪽짜리였다’고 생각했어요. 공식 역사가 말하지 않은 것을 자료를 통해 보충해주고 싶었습니다.”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휴머니스트)의 저자 박건호 씨(51·사진)가 수집에 새롭고 큰 의미를 부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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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사진을 무심코 수집했는데 모으다 보니 주례 뒤편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게 스무 장쯤 돼요. 국가주의가 심했던 1970년대 찍은 거라고 봤는데 사진들 뒤를 보니 1950년대예요. 뿌리를 찾으니까 일제강점기, 집이 아닌 식장에서의 ‘사회결혼’이 유행할 때 일장기를 걸었던 것이 광복 후 태극기로 바뀐 거였어요. 수집하다 이야기가 보이게 된 거죠.”
책은 1920년대 경성자동차학교에 다니던 청년 김남두가 고향 집에 보낸 편지, 1907년 정미의병 때 충북 제천에서 실종된 통역관 조용익을 찾는 훈령, 1941년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전장에 나가기 직전 찍은 조선인 청년 9명의 사진, 1952년 7월 강원도 육상대회에서 우승한 삼척공고 기념사진 등 당대 서민 민중 민초가 남긴 미시사다. 역사책은 알려주지 않던 그 시대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의 11장 ‘전쟁도 지우지 못하는 민중의 삶’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6·25전쟁 때 군인들이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쟁 통에 꽃은 무슨…’ 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꽃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삶이 있습니다. 삶이란 ‘독립운동’이냐 ‘친일’이냐같이 획일화, 규격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다기합니다. 150mm 박격포 탄피로 재떨이를 만들어 쓰고, 미국 원조품 포대로 바지를 지어 입었습니다. 민중은 역사에서 둥둥 떠다닌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삶과 대면했습니다.”
종이로 된 자료 중심으로 약 1만 건을 수집했다는 박 씨는 60세가 될 때까지 4권의 책을 더 낼 생각이다. 그것이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온 자료들에 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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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