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다시 현실화된 금융권 ‘동원령’[현장에서/김동혁]

입력 | 2020-07-24 03:00:00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국회개원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을 16차례나 언급하며 “민간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동취재단

김동혁 경제부 기자

이번에도 역시 은행들이 동원됐다. ‘한국판 뉴딜’ 말이다.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그룹 등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조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은 위원장은 한국판 뉴딜사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설명하고 ‘민간 펀드’에 금융사들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의 핵심 사업은 대부분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만큼 금융 시스템의 위험 분산, 자금 배분 기능이 적극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며 “부동산으로 쏠리는 시중 유동자금을 생산적 부문으로 유입되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금융권에서는 “부탁의 형식을 빌렸지만 거절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이 지시한 사안인 만큼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얼마를 낼지 정해야 하는 자리라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국회 개원 연설 직후 여야 대표와 가진 환담회에서 “오랫동안 금융 쪽이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금융자산과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민간펀드를 만들어 한국판 뉴딜사업을 추진하려 한다”고 했다.

은행권은 올 들어 이미 4차례 정부 정책에 동원돼 약 10조3000억 원을 출자하기로 약정했다. 3월에는 중소기업 기술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한 ‘기술혁신전문펀드’에 참여했고, 코로나19에 따른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증권시장안정펀드에도 수조 원의 자금을 넣기로 한 상태다. 그나마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은행별로 200억 원을 요구한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 출자는 고사했지만 이번 뉴딜 펀드는 거부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은행은 공적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정부가 예금자 보호를 통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주고 있고, 진입장벽을 설치해줌으로써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은행돈을 ‘쌈짓돈’으로 여겨도 된다는 건 아니다. 은행권에서는 “관치(官治)에 끌려다니느라 제대로 된 자금 운용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날 선 반응까지 나온다. 수시로 출자를 요구받다 보니 은행이 미리 계획했던 독자적인 자금 운용계획이 무산되는 경우도 빈번하고, 돈만 내고 펀드 운용 과정에 은행권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 그럼에도 “정책에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 거부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은행권의 현실이다.

조찬 이후 금융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금융지주 회장들이 ‘한국판 뉴딜 정책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금융권의 참여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나갈 계획’이라고 화답했다”고 했다. 아직 어떤 식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뉴딜사업을 활성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지만 결국 은행권이 또다시 동원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불편한 현실’이다.

김동혁 경제부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