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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태에…이수정 “음모처럼 몰고 가…참 괴이한 현상”

입력 | 2020-07-22 10:13:00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 News1 DB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지지자들이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서울시 직원을 향해 ‘왜 4년 동안 가만히 있었느냐’고 2차 가해를 하는 것과 관련해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위계나 위력이 있는 조직에서 피해자가 쉽게 발고하기 어렵다”고 피해자의 당시 상황을 대변했다.

범죄심리학자인 이 교수는 21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왜 4년 동안 가만있었느냐’, ‘(폭로 전) 너무나 활달하게 근무했다’ 등의 말이 나온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상사가 생사여탈권을 다 쥐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그만둘 생각이 아니면 문제를 제기하기가 무지하게 어렵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위계나 위력이 있는 (곳에서) 장기간 동안 근무를 함께해야 되는 조직에서는 피해자가 쉽게 발고하기가 어렵다”며 “더군다나 주변에 굉장히 많은 일종의 방패 비슷한 많은 동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까 피해자들은 그분들과 모두 싸워야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시간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명을 지르거나 뛰쳐나오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나와도 정말 그 길로 경찰에 가는 것은 너무나 먼 길이고, 그럼 그 다음 날 출근을 할 수가 없다”며 “누구도 쉽게 본인의 생업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나중에 피해자들도 ‘빨리 신고를 할 걸 그랬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이번 피해자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보통 이런 정도의 피해는 굉장히 장기간 동안 일어난다”며 “비슷한 극단적인 사례를 말씀 드리자면, 친족 성폭력 사건은 같은 집에 살지 않느냐. 직장이 같은 거하고 약간 관계가 다르지만, 비슷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피해자와 가해자는 수십 년이 되어서야, 어른이 되어서야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런 부분에 대해 가정하지 않은, 한 번도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던, 위계에 의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걸 경험해 본 적 없는 분들은 ‘대체 왜 그럼 신고 안 하냐’고 비난을 하신다”며 “그게 사실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피해자가 ‘피해 호소인’ 등으로 불리는 것과 관련해선 “이분은 경찰에 가서 신고를 하신 분”이라며 “그러면 경찰에다가 신고를 하는 즉시, 법적으로는 ‘피해자’가 된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조차 인정을 안 해 주면서 피해 사실을 일종의 음모처럼 이렇게 몰고 가는 태도는 매우 잘못 됐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부르지도 않는 상황은 제가 전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에 절도를 당했다고 신고를 하면 그때부터 절도 피해자가 되는 거고,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하면 사기 피해자가 되는데, 왜 성희롱으로 신고를 하거나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면 왜 피해자가 안 되고 ‘피해 호소인’이 돼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히 자격요건이 필요한 건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참 괴이한 현상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입증의 과정을 거쳐야만 유무죄가 가려지는 아주 좋은 사법절차를 갖고 있다”며 “때문에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으로 무엇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2차 가해행위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누적된 우리나라의 성범죄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들의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