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외로움’이라는 연구 주제는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미국, 유럽에서 연구한 심리측정 척도를 다른 문화권에 사는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늘 따라다녔던 것. 지난달 한국심리학회지에 ‘한국인의 외로움: 개념적 정의와 측정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게재한 서영석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는 17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심리적 문제의 측정과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며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서 교수는 한국인이 언제, 왜 외로운지 구체적 맥락을 분석하기 위해 한국문화 특성이 잘 드러난 드라마, 웹툰, 신문·방송 기사, 문학·철학 서적, 논문을 분석했다. 대중문화 콘텐츠 중에서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미생’, 웹툰 ‘어쩌다 발견한 7월’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등이 대상이 됐다.
분석 결과 한국인 외로움의 특성은 △다른 사람과 하나라고 느끼지 못할 때 △집단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느낄 때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언뜻 보면 특정 문화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미묘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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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는 자기희생적인 부모의 자식사랑이 치열한 입시문화와 만나면서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고 봤다. 자녀 주변을 뱅뱅 돌며 일정 관리를 해주는 ‘헬리콥터맘’과 같은 부모가 자녀를 과도하게 통제하려고 하면서 서로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부모들은 인생을 포기할 만큼 자녀에게 올인하며 ‘자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한다. 자녀가 독립하려 할 땐,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공허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 “자녀는 부모가 통제하고 간섭할수록 좌절감을 느끼고, 갈등을 경험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둔다. 결국 자녀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를 강조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한 개인이 집단에 소속감을 못 느낄 때 유독 외로워하게 된다고 봤다. 소속감을 일종의 ‘사회적 보험’으로 여기는데, 집단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는 순간 극도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 서 교수는 “토착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성씨 문화도 영향을 줬다”며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 왕따가 개인을 중시하는 미국 같은 나라의 왕따보다 더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 특유의 남과 비교하는 문화도 외로움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보다 더 많은 친구를 가진 ‘인싸(인사이더)’ 친구를 보면서 불안과 외로움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이 이런 외로움을 부추긴다”고 했다.
서 교수는 한국의 특수성을 접목한 심리측정 척도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신설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신건강을 케어하고 있다”며 “국내에선 ‘외로움이라는 것이 연구 주제가 될까?’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