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가 8억 원도 안 하지 않았냐, 미분양이 수두룩했다, 어떻게 5년 만에 집값이 두 배 이상으로 뛸 수 있냐…. 찾아와서 이런 하소연을 하는 손님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때마다 말하죠. ‘이거 분양가 기억하는 한 집 못 산다, 빨리 잊는 게 상책이다’라고.”(서울 종로구 ‘경희궁자이’ 아파트단지 인근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 2015년을 전후한 시점. 서울에선 1000세대 이상의 대규모 브랜드 아파트 분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단지는 ‘분양가가 너무 높다’, ‘위치가 나쁘다’, ‘학군이 별로다’라며 시장의 외면을 받아 저조한 분양 실적을 보였다. 대표적 예가 종로구 경희궁자이, 마포구 신촌푸르지오,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로, 각 조합과 건설사는 준공 때까지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준공 이후 인기 급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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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삼성물산]
그러나 준공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각종 편의시설과 커뮤니티를 갖추고, 도심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특히 3040세대가 이들 단지를 선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건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입주를 개시한 지 몇 년 안 된 새 아파트라는 장점은 더욱 두드러졌다.
최근 부동산값 ‘폭등’ 시기를 맞아 이들 아파트 매매가는 고공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 최근 5년 사이 서울 아파트 값은 83% 뛰었는데(KB부동산 2015년 6월 및 2020년 6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 기준), 이 세 군데 아파트단지 매매가는 분양가보다 2배 이상 비싸졌다. 6·17, 7·10 부동산 대책에도 ‘매도자 우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신촌푸르지오 단지 내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계약금 넣겠다고 집주인에게 전화하면 3000~4000만 원을 더 올려서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해지곤 한다”고 토로했다.
세 아파트단지 중 가장 비싼 곳은 서울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과 인접한 경희궁자이. 단지 내 C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33평형(전용면적 84㎡) 분양가가 7억9000만 원이었는데, 미분양이 나자 대출이 7억 원까지 나왔다. 지금은 17억 원 이하로 나온 매물이 드물다. 이달 들어 17억4000만 원에 실거래 된 건도 나왔다”고 말했다. D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12·16 대책으로 15억 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되면서 가격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다들 기대했다. ‘33평형 가격이 14억 원대로 내려오면 연락 달라’고 했던 손님이 있었는데, 이달 초에 ‘취득세 오르기 전에 서둘러 사야겠다’며 17억 원 조금 넘는 가격에 계약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 사대문 안에 직장을 둔 변호사, 정부 공무원, 대기업 직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의사들에게 인기 있는 아파트단지라 앞으로도 가격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입주 3년 만에 서민은 꿈도 꿀 수 없는 주거지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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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는 2014년 분양 당시 일반분양가가 조합원이 매물로 내놓은 값보다 수천만 원이 더 비싸 미분양 해소에 골치를 앓았던 아파트단지다. 서울지하철 5호선 고덕역과도 멀게는 1km 떨어져 있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하지만 준공 이후 단지 내 각종 편의시설과 산책로 등 장점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조용하게 살기 좋다’는 평판을 얻었다. 인근에서 가장 학군 좋다고 평가 받는 명일중학교, 배재중·고등학교와 가까워 3040세대에게 ‘자녀가 중학교 진학하기 전에 들어가야 하는 아파트’로 통한다.
이 단지의 최근 매매가도 심상치 않다. F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고덕역과 꽤 멀리 떨어진 뒷동 가격이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3억5000만 원이었는데, 7월 들어 14억5000만 원에 나오고 있다. 앞동과의 가격 차이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세가격도 크게 상승해, 최근 두세 달 사이 5억5000만 원에서 7억8000만 원으로 올랐다”고도 덧붙였다.
거듭된 규제에도 “일단 사두자”
서울 마포구 ‘신촌푸르지오’. [강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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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