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사고 터질 때마다 효과 없는 대책 반복 개인보다 전체 우선시하는 풍토가 폭력 양산 체육계는 가해자에 공감하며 피해자 외면 피해자 돕는 문화-시스템부터 만들어야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 사건이 생길 때마다 보고서에 적힌 연도만 없다면 과거 대책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를 정도다. 이번에도 또 가해자 처벌, 감시 및 교육 강화를 중심으로 한 대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폭력사태 이후 대책을 마련하면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면 문제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체육계 폭력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은 문체부나 대한체육회가 효과 없는, 대동소이한 대책을 강도만 높여 내놓았기 때문이다. 과거 정책이 실패하거나 한계를 보인 것은 피해자와 약자를 돕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아서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 선수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신고를 받은 경찰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 선수는 홀로 끊임없이 폭력과 가혹행위를 견뎌야 했다. 최 선수로선 삶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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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일부 인사는 가해자에게 공감하기도 한다. 가해자도 결국 우리 사람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가해자 상황도 이해해 주려는 것 같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악랄한 행위다. 가해자에 대한 이해심이 없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까칠한 사람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체육계가 엘리트 선수를 죽여선 안 된다며 가해자 편을 든다면 힘없는 피해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이기적 전체주의’가 작동하는 조직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조화를 이루고 힘을 모을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풍토에선 윤리적 조직을 만들기 어렵다. 이런 조직에선 부정이나 비리가 터지면 우선 부정행위자의 개인적 결함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선 피해자가 혼자 폭력 행위에 대응하고 극복하는 일에 사회적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나라 중 사회적 지지 항목에서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한 것과 우리나라 체육계에서 폭력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관하지 않다.
심석희, 신유용 선수 같은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스포츠 분야가 폭력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례는 여전히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피해를 드러내는 일을 온전히 개인의 용기에 의존하고 있다. 피해자를 찾아내고 보호하는 최소한의 일조차 지금의 체육계에선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 체육계에는 지도자와 선수, 선배와 후배 사이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특수한 분위기 때문에 폭력이나 비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토를 그대로 둔 채로는 ‘제2의 최숙현’ 사태를 막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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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돕는 문화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자에게 지원군을 만들어주자. 지원군이 든든한 사람을 함부로 때리거나 괴롭히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