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0주년 끝나지 않는 비극]
전투기 6대 호위 받으며 공중급유기로 유해 봉환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47위가 70년 만에 머나먼 길을 돌아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8년 북한이 미국으로 보낸 유해 중 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들이다. 23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주 히컴공군기지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인수받은 국군 유해를 공군 장병들이 공중급유기로 옮기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공군 전투기가 공중급유기를 엄호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그 후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24일 오후 5시 4분경. 태극기로 감싼 박 일병의 유해 운구함을 실은 우리 공군의 공중급유기(KC-330)가 F-15K 등 전투기 6대의 엄호를 받으며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안착했다. 그를 포함해 장진호와 평남 개천, 평북 온산 등에서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한 국군용사 147위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귀환한 국군용사들을 엄호한 F-15K 조종사 중에는 6·25 참전 조종사 고 강호륜 준장의 손자 강병준 대위도 있었다. 최초의 공군 조종사인 강 준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공군의 F-51D를 일본에서 인수한 뒤 단 한 번의 비행훈련을 받고 작전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낙동강 전선 방어 작전 등 78회 전투에 참여했다.
조국에 목숨을 바친 호국 영웅들의 뒤늦은 귀환을 애도하듯 궂은 하늘에선 굵은 빗줄기가 내내 흩뿌렸다. 유해들은 미국이 북한에서 발굴한 미군 유해 속에 뒤섞여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보관돼 오다 국군 전사자로 확인되는 데 길게는 3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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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국군포로 귀환에 미온적이었다. 비핵화 대화가 시작된 뒤로는 국군포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북한에 국군포로 송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북에 남겨진 국군포로는 사실상 ‘잊혀진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2014년 기준 국군포로 400명가량이 아직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 당국자는 “이대로 가다간 머잖아 북한 내 국군포로 대부분이 생을 마감할 것”이라며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은 그들의 헌신에 빚을 진 만큼 조속한 송환을 위해 특단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