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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북일고 2학년 노태형[오늘과 내일/김종석]

입력 | 2020-06-20 03:00:00

한화 구한 그는 황금사자 우승 멤버
튼튼한 싹 키워야 한국야구가 산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기록은 깨지지 않았네.”

야구에 별 관심이 없던 딸이 한화 얘기를 꺼냈다. 며칠 전 밥상머리에서였다. 한화의 연패 행진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6월 태양처럼 뜨거웠다. 한화는 1985년 삼미 이후 35년 만에 역대 최다 타이인 18연패를 찍었다. 아시아 최다 연패의 수모가 아른거렸다.

스물다섯 노태형이 9회말 2사 후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때려 23일 만에 눈물겨운 승리를 안긴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가슴 찡한 스토리도 전해졌다. 6년 전 신인 드래프트 당시 꼴찌에서 두 번째인 104번째로 뽑혀 프로 입단, 2군을 전전하다 강원 홍천 육군 11사단 복무(주특기 유탄발사기 사수), 올해 최저 연봉 2700만 원….

그렇다고 신데렐라가 하루아침에 탄생한 건 아니다. 그는 천안 북일고 2학년 때인 201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멤버다. 장충고와의 결승에서 1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에 도루도 했고, 희생번트로 득점에 기여했다. “강습 타구를 잡아 병살로 만들며 위기 상황을 넘겼고, 그 이후 분위기가 넘어오면서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큰 무대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결승 경기를 치러봤기에 프로 1군에 처음 나섰을 때나, 고비에서 긴장감을 줄일 수 있었다.”

8년 전 북일고의 결승에 나섰던 11명의 선수 가운데 이번 시즌 프로 1군에 등록된 선수는 노태형과 김인태(두산) 둘뿐이다. 매년 한 팀에서 10∼15명이 유니폼을 벗는다. 노태형은 프로 입단 후 오랜 무명 세월을 보내면서 시즌 종료 후 정리 대상 명단 발표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그래서 군에 자원입대한 뒤 짬날 때마다 캐치볼을 하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절박하게 운동에 매달렸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힘들 땐 고교 시절 영광도 떠올렸을 것이다.

마침 노태형이 잊지 못하는 황금사자기(제74회) 전국고교야구대회가 11일 막을 올려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무관중이지만 시즌 첫 대회를 기다려온 선수들의 열정은 뜨겁기만 하다.

올해 등록된 전국 고교야구팀은 81개에 이른다. 1997년 50개였던 팀 수는 2014년 62개로 늘었고 불과 5년 만인 지난해 80개가 됐다. 등록 팀만 176개인 리틀야구 저변 확대가 중고교 팀 창단으로도 연결됐다. KBO의 지원금도 창단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 야구 현실은 여전히 프로에 집중돼 있다. 고교야구 발전을 위한 노력은 부족하기만 하다. 팀 확대로 오히려 하향 평준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인 플레이를 위한 코칭 강화, 프로 선수가 아니더라도 야구와 연관된 다양한 진로를 모색해 주는 교육 프로그램도 절실하다. 신문, 방송,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콘텐츠 접근성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해졌다. 40년 가까이 중계를 하고 있는 허구연 해설위원은 “중고교 야구부 선수 생활이 일생을 좌우한다. 기량, 학업, 인성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다. 성적보다도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몇 년간 프로야구 관중 감소와 경기력 저하는 그 뿌리가 부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교야구도 과거처럼 스타를 키워야 한다. “고교야구는 프로야구의 내일을 책임질 파이프라인이다. 산업적 가치뿐 아니라 팬들에게 ‘발견의 기쁨’도 줄 수 있다.” 최준서 한양대 교수의 얘기다.

진짜 야구팬이라면 내가 응원하는 프로팀 연고지 고교 팀에도 애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앞으로도 노태형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가 쏟아질 수 있다. 누군가의 꿈에 주목하고 동행할 때 그 꿈은 더 커진다. 야구도, 나라도.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